[슬기로운 기자생활] 586도, MZ도 없는 기사
[슬기로운 기자생활]
선담은 | 정치팀 기자
“‘편도 박람회’, ‘편도를 먹고’ 이게 무슨 말이야?”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쌀값 대책으로 ‘밥 한공기 다 비우기 운동’을 제안해 논란이 벌어진 지난 5일 아침, 40대 후반인 같은 팀 선배가 어리둥절해하며 내게 물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김웅 의원이 조 위원을 비판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에 등장한 ‘편도’란 단어가 문제였다. ‘편의점 도시락’의 줄임말이라는 설명에 선배는 “옛날 사람은 엠제트(MZ)를 따라갈 수가 없구나”라고 답했다. 편의점 업계가 김혜자, 백종원 같은 유명인을 내세워 ‘가성비 도시락’을 출시하던 7~8년 전부터 쓰였던 말이었고, 정작 선배보다 나이가 많은 국회의원도 쓰는 말인데 세대론이 소환되니 좀 뜬금없게 느껴졌다. 곧장 ‘공손한 태도’로 반박(?)을 겸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선배가 ‘편도’를 잘 안 드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세계를 접할 때, 우리는 해석의 실마리를 얻으려 두루뭉술한 가설을 세우곤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대론이다.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나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내 앞에 있는 상대의 복잡다단한 속사정을 들으려 하기보다 쉽고 단순한 공식으로 대상을 분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를테면 ‘86세대=민주당 지지=진보=위선’ 또는 ‘엠제트 세대=공정=보수=일베’ 같은 이분법적 공식 말이다. 하지만 수학 문제가 아닌 개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양자택일의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취재 현장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엠제트 세대에 대해 자의적인 규정짓기(혹은 낙인찍기)를 남발하는 모습에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다. “또 엠제트 세대 타령이냐?”라는 젊은 기자들의 원성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국민의힘은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주 최대 69시간제’에 대한 의견을 듣겠다며 토론회에 ‘엠제트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협의회)를 초청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현장에서 협의회 쪽 사람들이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조목조목 반박하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애초 양대 노총 가입을 거부하고,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반대한 공기업 노조 청년들이 다수 소속된 협의회가 윤석열 정부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집권 여당이 이토록 얄팍한 편견에 갇혀 있는데, 노동개혁이든 노동개악이든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주 69시간제 논란 초기,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이 양대 노총과 거리를 둔 협의회를 띄워준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이들과 ‘선 긋기’를 해왔다. 그러나 국민의힘 토론회에서 협의회가 ‘깽판’을 쳤다는 소식에 뒤늦게 부랴부랴 환노위 위원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청년 직장인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민주당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엠제트 유권자’를 원했던 건 아닌가란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양대 노총을 비판하면 보수일까? 주 69시간제를 반대하면 진보일까?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양대 노총에 가입한 청년이라 해도 소속 집단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고,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대남’ 역시 자신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근로시간 유연화를 반대할 수 있다. 1년7개월 동안 이 코너에 글을 쓰면서 ‘86세대’나 ‘586’이란 단어를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도 언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제 입맛대로 ‘요즘 애들’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일에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엠제트 노조를 대하는 여야의 엇갈린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곱씹게 됐다.
586세대도, 엠제트 세대도 서로 함부로 규정짓거나 단정하지 말기. 손쉬운 세대론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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