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가 전략이 될 때

한겨레 2023. 4. 2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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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있는 그룹 아이브의 '키치'라는 노래 후렴구다.

나름의 반항기로 불러대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키치가 사용된 맥락이 다소 엉뚱하다 싶다.

키치를 전략으로 취한 선례인 팝아트는 고급예술의 고답적 태도가 고루했던 1960년대 서구의 젊은 작가들이 대중문화를 순수예술에 활용했던 예다.

이때의 광고와 만화가 키치라면, 그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기성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팝아트는 키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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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최정화, <숨 쉬는 꽃>, 프랑스 안시 설치, 2018, 최정화스튜디오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어느덧 제 주장이 분명해진 열한살 딸아이가 “우리만의 자유로운 nineteen's kitsch~”를 따라부른다. 요즘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있는 그룹 아이브의 ‘키치’라는 노래 후렴구다. 나름의 반항기로 불러대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키치가 사용된 맥락이 다소 엉뚱하다 싶다. 키치를 자유로움, 개성 강한 스타일 정도로 이해한 노랫말이다. 일상에서 쓰이는 개념을 똑 떨어지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제멋으로 오도된 노래와 그 인기는 자체로 키치스럽다.

예술사 맥락에서 키치는 광고, 잡지, 만화, 유행가 같은 통속 문화를 일컫는다.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1909~1994)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문화가 곧 키치”라고 했다. 애초에 키치는 ‘우월한 고급문화’와 ‘저급한 대중문화’를 경계 짓고자 사용됐다. 아놀드 하우저(1892~1978) 역시 “싸구려 형식을 갖춘 예술인 키치는 기만적인 현실 묘사에 불과하다”고 했다. 진품을 모방한 가짜라는 뜻이다.

독일어에서 파생됐다고 알려진 키치를 의역하면 달콤쌉싸름 정도가 될 듯하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도금, 시들지 않는 조화처럼 진짜를 닮고자 했지만, 보석도 꽃도 아닌 허상을 키치라 한다. 태도로서 키치를 말하기도 한다. 문구점에서 파는 공주놀이용 왕관에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열광하는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조악한 플라스틱 장난감은 파티의상을 돋보일 일회용 장신구로 인기 높다. 인증샷용 연출에 진짜는 필요 없다는 태도는 유쾌하나 그럴듯한 껍데기는 씁쓸하다.

그런데 이런 키치가 반항기를 품기도 한다. “조화와 생화 중 어느 것이 일회용일까?”를 물을 수 있을 때, 키치는 공격성을 장착한다. 금세 시들고 마는 진짜 꽃과 시들지 않는 가짜 꽃 중 어느 쪽이 진정 일회용이냐고 따져 물은 이는 작가 최정화(1961~)였다. 생물이어서 죽기 마련인 꽃을 거대한 크기의 형형색색 플라스틱 풍선으로 대체한 최정화의 꽃은 공기를 주입하는 기계장치가 꺼지지 않는 한 부풀기를 반복하며 내내 호흡한다. 작품명 <숨 쉬는 꽃>이다.

최정화는 참되고 순수해야 한다는 고급예술의 허위의식을 비틀면서 1990년대 화단에 등장했다. 풀지 못할 미지수 같은 엑스(X)세대가 출현해 기성세대의 어안을 벙벙하게 했던 시절이다. 1989년부터 전면자유화된 해외여행을 한껏 누린 당대의 청년들은 다국적 자본과 서구의 자유분방함에 흠뻑 취해 전례 없던 짬뽕문화를 만들어내면서도 기성의 권위 앞에 다름으로 당당했다. 최정화는 3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대변하며 신세대 미술가로 불렸다.

최정화는 전략으로 키치를 취하고, 수단으로 플라스틱을 택했다. 키치와 플라스틱은 서로를 위한 필연처럼 찰떡궁합이었다. 이미지를 소비하며 그래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무의미한 현실을 표상하기에 플라스틱만 한 재료가 없었다.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플라스틱으로 꽃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고, 과일도 만들어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를 구현했다. 압도적으로 크고 강렬한 원색으로 치장해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익숙한 세태를 여봐란듯이 과시했다. 시장표 플라스틱 소쿠리로 높다랗게 탑을 쌓아 올린 작품에 이르면 조롱보다 진심을 느끼게 된다.

통통 튀는 개성을 키치로 오해한 데는 팝아트의 이미지가 작용했을 터다. 키치를 전략으로 취한 선례인 팝아트는 고급예술의 고답적 태도가 고루했던 1960년대 서구의 젊은 작가들이 대중문화를 순수예술에 활용했던 예다. 이때의 광고와 만화가 키치라면, 그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기성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팝아트는 키치가 아니다. 제트(Z)세대가 부모뻘 엑스세대와 다른 개성을 말하려면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흉내는 키치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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