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규모 펀드 신설 효과···전략기술 R&D에 올 4.7조 투입

박진용 기자 2023. 4. 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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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스타트업 지원 방안
법인 출자 세액공제 항목 신설하고
세컨더리펀드 확대 등 회수 활성화도
모태펀드 확대 등 근본처방 빠져
"분위기 바꾸기엔 역부족" 지적도
이영(오른쪽)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정부가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규제 등을 과감하게 푼 것은 이른 시일 내에 대형 펀드가 조성돼 말라버린 벤처투자 자금줄을 되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아울러 ‘이자장사’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은행들의 고민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태펀드 증액 등 정부의 재정 투입이 현실적으로 여러운 상황에서 자본력을 갖춘 시중은행의 힘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시중은행이 벤처펀드 조성에 적극 나설 경우 5~6조 원 규모의 펀드가 신설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이 벤처펀드 운용회사에 출자하면 펀드 운용사는 은행 출자금과 함께 민간 투자자금을 추가로 받아 펀드를 조성한다. 통상 벤처펀드 운용사는 출자금의 5배 정도로 펀드 금액을 조성해 투자한다. 지난해 말 기준 4대 은행의 자기자본은 △국민은행 33조 5000억 원 △신한은행 29조 1000억원 △하나은행 28조 6000억 원 △우리은행 24조 5000억 원이다. 은행들이 출자 한도를 최대로 늘린다고 가정할 경우, 4대 은행이 약 1조 1570억 원을 출자하고 벤처펀드 운용사가 출자금의 5배인 약 5조 7850억 원을 조성해 벤처에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은행들이 이자 수익 위주의 사업을 하는 데 대해 문제(이슈)가 제기된 상황”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도 (이자 수익 외 다른 수익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인) 벤처 쪽으로 기회를 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은행의 벤처출자 한도를 확대할 경우 은행 쪽도 당연히 건전성을 신경을 쓸 것이고, BIS 비율 뿐만 아니라 위험도가 높으면 가중치를 높게 주는 식의 시스템도 이미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이 전반적으로 기업 성장 단계에서 중·후기 단계의 기업보다는 초기 단계 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초기 성장단계 기업을 대상으로는 6조1000억 원을 지원한다.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이 총 1조2000억 원의 보증을 추가 공급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인공지능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관련 연구개발(R&D)에 5년간 25조 원(올해 4조7000억 원)을 투입한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10조5000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과 은행권의 추가 자금투자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회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세컨더리 펀드 확대 등 업계의 숙원 사항도 나름대로 반영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책금융기관의 특례보증 등 추가지원은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회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세컨더리 펀드 확대와 각종 M&A 지원방안은 업계에서 그동안 꾸준히 제안했던 사항”이라고 평가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도 “규제개선을 통한 투자 촉진, 복수의결권 도입 등 의미 있는 대책들이 포함돼 있다”며 “고금리와 투자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 스타트업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자금 지원 못지 않게 규제 개선에 역점을 기울인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 벤처 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주요 출자자인 법인의 출자 세액공제를 신설하기로 했다. CVC(기업형 벤처캐피털)가 국내 창업기업의 해외 자회사를 대상으로 투자할 경우 국내 기업 대상 투자로 간주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M&A 목적 펀드의 신주 투자 의무(현재 40% 이상)를 폐지하고, 상장사 투자 규제(현재 최대 20%)도 없애기로 했다.

다만 초기 기업에 대한 지원에만 너무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포는 "벤처·스타트업들은 초기에서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투자받기 어렵고, 최근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중기와 후기 성장단계 기업들에 대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정부는 중기 성장단계 기업을 대상으로는 융자 9000억 원과 펀드 1조 원 등 총 1조9000억 원, 후기 성장단계 기업에는 펀드 3000억 원과 융자 1000억원 등 총 400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중소 벤처캐피탈(VC)를 위한 모태펀드 확대 방안과 CVC 해외투자 비율 완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빠진 것도 아쉬운 포인트다. 벤처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인들과 VC업계에서 모태펀드 증액을 한목소리로 외쳤지만 이번 대책에 공개된 지원 수준으로는 현장에서 체감 효과를 느끼기 쉽지 않다”면서 “고금리 대출 등에 신음하는 기업인들을 위한 이차보전(이자 일부 지원) 등의 실질적 대책이 빠진 것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벤처기업협회도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반영되길 기대한다”며 “추가적으로 민간 벤처 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주요 출자자인 법인에 대한 출자 세액공제를 최대 15%까지 확대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윤지영 기자 yj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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