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에 우선매수권…여력 없는 20·30엔 ‘그림의 떡’
[전세사기]
20일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해 당정이 입법을 추진하기로 한 우선매수청구권(우선매수권)은 현행 경매제도에 새로운 특례를 도입한다는 뜻이다. 선순위 저당권이 세입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있는 집이 경매를 거쳐 제3자에게 낙찰되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거의 건지지 못하고 강제 퇴거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나온 구상이다. 즉 전세사기 피해자에 한해 제3자가 부른 최종 낙찰가격에 피해자가 집을 매수할 수 있는 자격을 주자는 게 우선매수권 도입 목적이다. 매수 자금을 조달할 여력과 의지가 있는 피해자에게만 실효성이 있다는 점은 한계다.
우선매수권 도입을 위해선 민사집행법 개정이나, 전세사기 피해자에 한해 적용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아직 정부·여당이 내놓은 법안은 없지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깡통전세·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특별법’에 같은 취지의 대책이 담겨 있다. 이 법안은 정부 조사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인된 임차인에게 최종 경매 낙찰자가 신고한 가격으로 집을 매수하겠다고 법원에 신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때 기존에 낙찰을 받은 사람은 차순위 매수 신고인이 된다.
피해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더라도 배당 순서는 기존과 같다. 최종 낙찰가가 얼마이건, 낙찰자가 누구이건 1순위 배당권자인 근저당권자에게 배당이 먼저 돌아가기에, 선순위 채권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한 피해 임차인 처지에서는 선순위 채권자에게 배당이 먼저 이루어진 뒤 돌려받을 보증금이 아주 소액이거나 아예 사라진 상황에서 매수 금액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우선매수권 행사 의사가 있는 피해자들을 위한 경매 낙찰자 금융 저금리 대출을 함께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매수권이 피해 지역인 인천 미추홀구 경매시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를 놓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집값이 과거 주택시장 과열기에 견줘 많이 떨어진데다 최근 미추홀구 지역 경매 낙찰가가 감정평가액의 50~60% 수준으로 내려온 점은 우선매수권 행사 희망자가 많을 거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다. 반면 낙찰금(주택 매수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점은 피해 임차인 편에선 우선매수권 행사에 부담이 된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피해자들로선 사실상 임대보증금을 잃는 것이 전제돼 있어, 일반인들이 낙찰받는 금액보다는 비싸게 집을 사게 되는 것”이라며 “현금 여력 있는 피해자에겐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가진 재산이 없는 20·30세대들은 선뜻 나서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우선매수권 부여가 낙찰가를 낮추는 압력으로 작동해 선순위 채권자가 받을 돈을 줄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임차인의 우선매수권 행사가 예상되는 만큼 경매 참여자가 줄거나 없어 유찰이 반복되고, 그 결과 낙찰가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경매 참여자가 임차인의 우선매수권 행사 의지를 꺾기 위해 원래 계획보다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고, 이에 따라 임차인으로서는 정작 매수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이날 “임차인 권리 보호와 낙찰자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방안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하겠다”고 말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우선매수권이 피해 임차인에게 하나의 ‘선택지’는 될 수 있지만, 이 방안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를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여당이 선을 긋고 있는 ‘공공기관의 피해 주택 매입 및 공공임대 제공’ 대안이 여전히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자산관리학과)는 “경매로 집과 보증금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긴급 주거지로 제공한다고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재고도 부족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며, “대신 공공이 기존의 매입임대제도(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민간주택을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를 활용해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이라도 지켜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여당이 피해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했다 .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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