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팽동현의 AI인] 테크분야 법 제도 25년 `한우물`… "AI법제 한국이 주도할수 있어"
국내 이커머스 태동기 관련책 내며 전자상거래 법 토대 닦아
"AI, 안전성·투명성·신뢰성이 핵심… 역효과 방지 장치 필요"
UN국제상거래법위원회 韓대표로서 AI 계약 의제 최초 제안
혁신적인 신기술이 등장해도 바로 대중적으로 활용되거나 가치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상의 여러 만남부터 부동산 임대차계약 등까지 수많은 약속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신기술 또한 부작용을 줄여가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 뒷받침돼야 더욱 널리 쓰일 수 있다. 자동차가 나온 뒤로 도로교통 규정이 쌓여왔고, 인터넷 보급과 함께 사이버위협이 주요 화두로 다뤄지고 있다.
지난해 말 등장한 챗GPT를 필두로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IT분야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AI윤리, 나아가 AI분야 법제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테크 분야 법제도를 25년 이상 연구한 최경진(47·사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가천대 법학 교수)은 한국의 AI법제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할 가능성을 엿본다.
◇신기술 좋아하는 얼리어답터 법학자
"어렸을 적부터 미래사회는 신기술이 이끌어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인터넷도 비교적 이른 시점인 90년대 초중반에 쓰기 시작했죠. 그때 유닉스를 공부했던 게 지금의 모바일앱 개발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 등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해 왔습니다."
성균관대 법학과 92학번 출신인 최 교수는 국내 이커머스 태동기에 저서 '전자상거래와 법'을 내면서 전자상거래 분야 법·제도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2004년 미국 듀크대에서 초빙 강사 자격으로 한국의 법제도에 대해 강의, 2006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2007년부터 가천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인공지능·빅데이터정책연구센터장도 겸하고 있다.
최 교수는 "사회를 바꾸려면 제도까지 바뀌어야 하고, 바뀐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결국 법에 반영돼야 한다. 안정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여겨 법학 전공을 택했다"면서 "특히 IT를 비롯한 첨단기술을 좋아하는 만큼 관련 법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 일조함으로써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해 올 9월 시행 예정인 개인정보보호법의 개정 과정에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UN(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한국 정부 대표를 수년간 맡고 있고,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도 정보보호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AI산업, 규제 못잖게 진흥 뒷받침돼야
"전자화와 자동화가 21세기 사회변화의 핵심요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동화의 연장선상인 지능화가 챗GPT 등장을 기점으로 더욱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것 같아요. 법은 이런 신산업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함과 동시에, 정보격차나 가짜뉴스 및 보안위협 등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양 측면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지난달 생성형AI의 기반인 초거대AI의 개발을 6개월 간 중단하자는 FLI(미래생명연구소)의 공개서한에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워즈니악을 비롯한 1000여명의 인사가 서명해 화제가 됐다. 이어 19일(현지시간) 독일에선 총 14만명 이상 작가·예술가들이 소속된 42개 단체가 챗GPT 등 생성형AI로부터 비롯되는 저작권 위협을 지적하며 규제를 촉구했다. 이미 지난해 코드 생성AI '깃허브 코파일럿'를 두고 개발자들이 소스코드 도용으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세계 각국도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하 NTIA(통신정보관리청)는 AI시스템이 국가안보와 교육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규제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에 나섰다. 중국 사이버규제당국인 CAC(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도 AI가 생성한 내용에 사회주의 핵심가치가 반영돼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생성식인공지능복무관리판법' 초안을 발표했다. EU(유럽연합)의 경우 EC(EU집행위원회)가 2021년부터 AI시스템 위험도를 4단계로 나눠 규제하는 AI법을 추진하고 있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에 이어 지난해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에 취임한 최 교수도 이 같은 국내외 동향을 주목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AI의 안전성·투명성·신뢰성 확보가 핵심이다. 신기술에 대한 부작용이 커지면 여러모로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니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수년전부터 주장했지만 아직 국내엔 반영되지 않은 '데이터 규제샌드박스' 내용이 EU AI법엔 포함되고 자문도 청하더라. 이들 역시 산업진흥을 함께 챙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 AI법의 경우 지난 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7개 관련 법안을 병함 심의해 통과시켰다. 과방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의결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우선허용-사후규제 등 진흥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기술 역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초거대AI를 자체 개발한 4개국 중 하나지만, 이 분야를 선도하는 미국 등에 비해선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산업 초창기이고 크게 현실화된 위협이 없는 현재로선 진흥에 일정부분 치우치는 게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AI 등 자동화된 시스템의 결정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신설됐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이미 갖췄다"고 했다.
◇생성AI 저작권 이슈는 지속적 논의 필요
생성형AI가 만든 생성물의 저작권을 묻는 질문에 최 교수는 무죄로 판결 난 가수 조영남 씨의 미술 대작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법원은 예술 표현을 위한 기본적·구체적 발상을 제공했으면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봤다. 이는 지금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연상케 한다"며 "AI의 독립성을 논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진 않았으므로 현 단계에선 창작도구이자 의사표시 능력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다만 AI학습용 데이터와 생성 결과물 관련 저작권 침해 이슈에 대헤서는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 교수는 "생성형AI의 학습·생성이 기존 저작물 이용 행태와는 다르다는 주장도 있고, 새로운 유형일 뿐이므로 전통적인 저작권 체계 내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둘 다 일리 있고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일단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원 저작권자를 찾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면서 적절한 보상이 오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생성형AI 관련해 다양한 법제도적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 최 교수는 한국이 이 분야 선도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직 AI법제에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게 없다. 정부가 이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 좋겠다"면서 "한국은 이 분야에서 앞서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선도한다면 우리 국민과 특히 기업의 AI 관련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UNCITRAL 한국정부대표로서 AI 계약 의제를 최초 제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국인공지능법학회를 AI법제 관련 실용적이고 국제적인 논의의 장으로 꾸려간다는 계획이다. 내달 가질 학술대회에는 챗GPT를 차단한 이탈리아에서 그 배경을 발표하러 볼로냐대 교수도 참여한다.
최 교수는 "AI는 이제 글로벌 이슈고, 과거 여느 기술보다도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면서 "갈수록 커질 AI 관련 법제 논의를 한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AI가 우리사회에서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한국인공지능법학회를 중심으로 연구와 노력을 이어가겠다"며 포부를 내비쳤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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