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날 집 대출로 다시 사라니… `빚 수렁` 밀어넣는 정부
거주 주택 '우선매수권' 추진
저리 대출·심리상담 등 지원
정부 '빚내서 버텨라' 정책에
"소 잃고 외양간" 비난 목소리
"당정은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자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추가방안을 밀도있게 논의했다."(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국민의힘과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주택 경매 때 '우선매수권'을 주고 저리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긴급 대책이 일단 '발등의 불'은 끌 수 있겠지만 '또 빚내서 버티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며 실효성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정협의로 우선매수권·저리대출·범죄수익 몰수 등 제시됐지만= 국민의힘과 정부는 20일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고 △피해 주택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경매 유예 조치 △범죄수익 전액 몰수 △찾아가는 법률·심리 상담 제공 등의 추가대책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협의회가 끝난 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피해 주택 경매 때 일정 기준에 맞춰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면서 "피해 임차인이 거주 주택 낙찰 시 구입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저리 대출을 충분한 거치기간을 두어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당정의 이런 움직임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사태가 더 커지고 나서야 시작됐다. 여야 정쟁으로 분주했던 정부와 국회가 이제서야 피해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냐는 지적부터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여야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전세사기 관련 법안들을 우선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부랴부랴 밝혔고, 관련 주무부처인 국토부와 행전안전부 등에서도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는 약속과 전세사기 관련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이 앞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매 유예조치'는 20일부터 시행된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대부업 등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 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해 자율적 경매·매각 유예 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대상으로 LTV와 DSR 등 대출 규제를 한시적으로 예외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내용도 추가로 발표했다.
이미 민간 채권관리회사(NPL) 등에 매각된 건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데 NPL이 최대한 경매 절차 진행을 유예하도록 협조를 구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추가 대책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오전 당정협의를 통해 나온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의 '우선매수권'과 저리 대출 지원 방안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가 가장 시급하다고 제시한 방안들 중 하나다.
안상미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는 소위 '낙찰꾼'들이 경매 넘어간 피해 세대들을 노리고 있다"며 "경매를 중지하고 원하는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살던 집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줘서 이들이 집에 그대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세사기 피해 '급한 불'은 끄겠지만, '불씨' 잠재우기엔 한계 뚜렷= 이 방안들이 시행된다면 일단 피해자들 앞에 떨어진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불씨까지 잠재우기는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매수권의 경우 '빚만 늘린다'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전세사기로 떼인 보증금도 대출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은 터라, 아무리 저리 대출이라도 추가 대출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히 부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추가로 빚을 더내서 이자를 낼 수 있는 피해자는 그나마 우선매수권으로 집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여력이 안되는 피해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은 안중에도 없는 카드"라며 "게다가 그 집 가격이 나중에라도 올라가야 자신의 보증금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값이 오르길 기다려야 하는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저리대출을 받아 우선매수권을 써서라도 사고 싶은 집인지 여부도 중요한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피해자들의 미래를 담보로 삼은 것과 다름없다"며 "우선매수권 시행 역시 법 개정사안이라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출구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피해현장에서는 이미 정부가 앞서 내놓은 대책들을 악용한 케이스들이 등장했다. 경매주택을 매입한 일명 '낙찰꾼'들이 대출 상환이 어려운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정부 지원으로 나오는 저리 대출을 받아 다시 전세계약을 맺자"고 유인하는 사례가 나온 것.
일각에서는 작년 정부가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손실을 서울회생법원에서 면책해줬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저리 전세대출 등이 아닌 기존 전세대금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표퓰리즘'이라는 격한 비판을 받았던 사안들이라 현 정부가 다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전세계약 자체가 개인과 개인 간의 계약(사적 계약)이기 때문이다. 역전세나 깡통주택으로 '전세사기 의심' 케이스들도 전국에서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기도 해 선례로 남긴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는 보여주기식 일방적인 대책 발표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임시 조치에 불과한 경매일시 중지로 시간을 확보한 만큼 그사이에 특별법 제정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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