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민주화 세력에 의해 죽어가는 한국 민주주의
4·19 혁명은 1960년 집권 자유당의 독재와 반민주적 선거 개입에 항거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날이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4·19를 전후해 희생된 민주열사와 당시 시위에 참여한 모든 학생·시민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하는 586 운동권 인사들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1987년 제5공화국을 종식시킨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공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공으로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후 문민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4·19 혁명의 주역들이 현실정치에 욕심을 내지 않고 학교로 돌아간 반면, 6월 항쟁의 주역들은 처음부터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이후 35년이 지나 50대를 넘긴 586세대는 철 지난 이념투쟁에 권력욕까지 넘쳐나 이 땅의 민주주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87년 체제 이후 두 차례 이상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정권을 주고받으며 민주주의를 실천하던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 이후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만 잡으면 상대를 적폐로 몰아 아예 씨를 말리려는 극단적 갈등 구조에 빠졌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의해 특정 이념과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끼리는 연대 의식을 공고히 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적대 의식이 극에 달해 도무지 타협과 양보는 찾을 수 없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그 씨가 뿌려졌다고 생각한다. 박연차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노 대통령 가족의 금품수수 사건으로 노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었다. 평생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논두렁에 억대 시계를 버렸다는 소문보다 더 그를 괴롭힌 것은 국민 앞에 떳떳하게 결백을 주장하지 못한 그 자신이었다.
가족이 받은 것을 몰랐다 해도 그 누가 믿어줄 것인가. 필자는 이것이 자존심 강한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국장에서 백원우 비서관이 뛰어나오며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것은 이후 한국 정치가 선악의 대결로 들어설 것을 예고했다. 문재인 비서실장을 비롯한 일부 친노 세력은 노 대통령의 죽음을 이명박 정부의 책임으로 돌렸고 자신들의 정치세력화에 활용했다. 이후 9년 동안 기회를 찾다가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고, 이어서 정권을 잡아 복수의 칼을 뽑아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적폐청산을 주장하며 보수정치 세력의 뿌리를 뽑으려 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장집 교수가 주장한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를 만들었던 정치·사회적 기초로서의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간 협약의 부정과 해체"였다.
그들은 적폐청산이라 쓰고 보수세력 말살로 읽었고, 이를 모를 리 없는 보수세력도 문재인,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좌파 진보세력을 결코 그대로 둘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한국 정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선악의 정치구조에 빠져들었다. 가치와 이념이 같으면 무슨 일을 해도 우리 편으로서 보호해야 하고, 가치와 이념이 다르면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나선다.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만 믿고 극도로 비민주적 방식으로 국회를 운영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열어놓고는 국민 세금으로 외유를 떠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당 소속 국회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부결시키면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가결시키는 것도 패거리 정치와 선악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봉투 경선에 휘말린 송영길 전 대표를 조기 귀국시키려고 안달인 것은 이성을 찾아서가 아니라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양보와 타협이 사라진 한국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죽어간다. 조그만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명에서 '민주'라는 이름이라도 빼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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