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5300원 짜리 음료? 엎드리세요” ‘거지’ 자처하는 카톡방의 정체는
이어서 ET 콕 입니다.
쫄깃한 젤리가 들어간 버블티, 한 잔 생각이 간절해도 가격이 4천 7백 원, 망설여질 때 있죠.
누군가 돈 없을 때 꿀팁이라며 이런 사진을 올렸습니다.
동글동글 검정 스티커를 붙인 음료잔. 이걸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랍니다.
고물가 청년 취업난 속에 요즘 MZ세대 사이 뜨거운 채팅방이 있습니다.
이른바 '거지방'입니다.
극도의 절약으로 남루하게 산다는 의미에서 다소 자극적인 이름이 붙었다는데 어떤 대화들이 오가고 있을까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통장에 9천 원 남았는데 한 달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공원 화단에서 쑥을 캐서 먹으라는 웃을 수만은 없는 농담이 올라옵니다.
3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고 하자, '대역죄'라는 격한 반응이, '어제 세차했는데 사치인가요?' 라는 글에는 '차가 있으니 사치입니다' 라고 응수합니다.
한 카페에서 5,300원짜리 음료를 사 마셨단 글에 배 불렀군요. 물 600원입니다.
결정타는 '엎드리세요' 라는 글입니다.
불필요한 지출을 꾸짖거나 뜯어말리는 글이 주를 이루지만 아낀 내역을 보여주며 칭찬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뻔한 위로나 격려는 사절입니다.
‘제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 올려드릴게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치킨이나 올려주세요.’ 라는 식입니다.
검색해보니 이런 채팅방 한 SNS에만 수백 개에 달하고, 이미 인원이 꽉 차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기성세대는 ‘내 돈 쓰는데 남들에게 알리는 것도 모자라 꾸중까지 들어야하나' 라며 의아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지만 최근 이런 방들의 유행은 빚투, 영끌로 힘들게 살고 있는 2030세대가 커피·담뱃값이라도 아끼며 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위기감을 반영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사실상 실업 상태이나, 구직 활동도 하지 않은 청년 즉, ‘쉬었다’고 응답한 15∼29세 청년은 49만 7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 전보다 9.9% 늘어난 규모로, 2003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습니다.
경기침체로 인한 경제고통지수의 경우 15∼29세 연령층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다는 통계를 보면 채팅방이 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만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건 아니야" "절약도 맞들면 낫지" 라는 공감대.
"잘했고, 잘하고 있다"는 안도,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 여기에 대화가 오가면서 나오는 깨알 재미 등을 함께 찾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스스로를 거지라 칭하며 진짜 가난을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선 또한 존재합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혐오적 표현을 오히려 자신들을 지칭하는 데 쓰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
절약방, 검소방 등의 표현을 대신 사용하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사소한 소비조차 줄여야 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이 씁쓸합니다.
소비를 과시하던 ‘플렉스’와 정반대인 남루한 채팅방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어 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티 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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