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영업사원’이라더니…리스크만 키우는 윤석열식 ‘마이너스 외교’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 언급과 양안 문제 발언을 계기로 불필요한 적을 만드는 ‘마이너스 외교’에 대한 비판이 높아진다. 동맹국과 끈끈한 연대를 다지는 외교도 필요하지만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외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러시아는 19일 윤 대통령 발언 공개 직후부터 ‘무기지원은 전쟁개입’, ‘반러시아 적대행위’라며 연일 경고음을냈고, 북한에 대한 무기 지원으로 ‘맞불’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은 반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한다”면서 ‘한반도 문제’를 꺼냈다. 북한 문제를 매개로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러시아를 자극한 촉매제가 된 것이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안보협력과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도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러시아와 같은 잠재적 후원세력이 북한과 밀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외교의 큰 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마이너스 요인을 줄이는 외교가 플러스를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데 윤 대통령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외교 최우선 목표로 삼는 윤 대통령은 내주 국빈 방미에 맞춰 모든 외교 현안에 대해 미국과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강력히 요청해온 사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한 축만 강화하기 위해 다른 축을 포기하는 외교는 있을 수 없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 중국, 일본과 함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관련국 중 하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지지 없이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추가 제재가 어렵다. 북한이 러시아, 나아가 중국과의 3국 군사협력을 확대한다면 윤 대통령이 북핵문제 대응책으로 내세우는 한·미·일 안보협력과 충돌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대만해협 긴장 상황에 대해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라고 공개 발언한 것도 당장 양국 간 갈등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의 전날 인터뷰 발언에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의 몫”이라며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중국은 지난 2월 박진 외교부 장관이 CNN 인터뷰에서 “한국은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현 상태 변경에 반대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썼다.
이에 외교부가 이날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고 맞받아치면서 양국 간 갈등은 불이 붙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은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또 이날 오후에는 장호진 1차관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포함해 국가 통일성이나 영토 문제는 ‘핵심이익’으로 여기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왕 대변인이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으로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이라고 표현한 점도 이 때문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 통일을 반드시 실현돼야 하는 역사적 사명으로 삼고 무력 사용까지 언급한 것과 정면 배치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관련한 리스크 관리의 실패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대립하고 있는 민감한 외교 현안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지키는 대신 노골적으로 미국 입장에 서면서 한·러관계와 한·중관계가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대립 구도만 강화할 수 있다. 북한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신냉전 대립구도 활용의 명분으로 끌어다 쓸 가능성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가벼운 입으로 불필요한 적을 만드는 윤 대통령의 마이너스 외교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천명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에 어울리지 않게 외교 리스크만 키우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국빈 방문했다가 난데없이 이란을 적으로 만든 것도 윤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됐다. 당시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UAE를 ‘형제 국가’로 칭하면서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고 규정했다. UAE와 이란 관계의 단순화도 문제지만 한국과 이란은 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이란의 양자 관계를 함부로 규정하고 외교 문제에 아무렇지 않게 발언한 것이다. 외교부는 부랴부랴 불필요한 확대 해석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명했지만 이란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면서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전략적 사고 대신 단순하고 편향적 인식에서 나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미·중 갈등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국 외교의 균형점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와 중국을 등 돌리게 하는 ‘대형사고’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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