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도 조선1번지 흔적뿐 … 2030 몰려든 평택 천지개벽

박동환 기자(zacky@mk.co.kr),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송광섭 기자(opess122@mk.co.kr) 2023. 4.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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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와야 지역 살아난다" 현장 르포

◆ 지방경제 비상 ◆

지난 14일 찾아간 부산시 영도구 '부스트벨트' 예정지가 썰렁한 공터로 남아 있다. 한국타이어 물류센터가 떠난 자리에 부산시가 해양신산업단지를 조성할 예정이었으나 계획 발표 후 20개월이 흘렀다. 부산 박동환 기자

지난 14일 낮 12시 50분.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수리조선소단지 일대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는 풍경이 펼쳐지는 다른 지역 산업단지와는 달랐다. 수리조선소단지로 들어서니 낡은 건물에 영세 조선기자재업체 간판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선박엔진 수리업체 직원 A씨는 "수리를 맡기는 물량이 부쩍 줄었다"며 "해마다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영도조선소단지는 한때 한국 조선업의 기둥이었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1990년대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과 협력업체들로 붐볐지만 2010년 이후 한진중공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한진중공업은 2021년 동부건설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공장 밀집 지역인 영도구 청학동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청학동 인근 8만2032㎡ 규모의 한국타이어 부산물류센터가 2019년 폐쇄된 영향이다. 그 자리에 부산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해양신산업단지(부스트벨트)를 조성하기로 했지만 세부 계획 없이 여전히 공터로 남아 있다. 청학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인근 청년들이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과 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면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며 사람이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 수리조선소 모습.

대기업이 사라지며 최근 10년간 영도구에서는 인구가 급속히 유출되고 있다. 2010년 14만7000명이던 영도구 인구는 지난해 10만8000명으로 26.5% 감소했다. 충북 흥덕구(-35.3%), 대구 서구(-28.8%)에 이어 전국 시·군·구 가운데 인구 유출이 세 번째로 많은 지역으로 꼽혔다. 선박기자재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대기업이 오지 않는 한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며 "부산시가 관광·서비스업만 신경을 쓰고 기업 유치에 소홀했다는 불평이 많다"고 말했다.

영도구와 대척점에 있는 지역으로는 삼성 등 대기업이 진입하며 지역이 살아난 경기 평택시, 충남 아산시 등이 손꼽힌다. 특히 수도권 변방이던 경기도 평택시는 201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 후 완전히 탈바꿈했다.

20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인근 상권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삼성전자 공장 신설로 협력업체까지 근로자 8만여 명이 새로 평택에서 일하게 된 덕분이다. 박형기 기자

지난 14일 점심시간 평택시 고덕국제신도시 번화가인 첨단대로 일대의 식당은 직장인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봄날을 즐기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과 외국인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곳곳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는 등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쳤다.

평택시는 2017년만 해도 인구 40만명에 그쳤다. 하지만 '삼성 효과'에 5년 새 인구가 20% 급증하며 58만명을 넘어섰다. 고덕국제신도시에는 289만㎡ 규모의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이 2030년까지 총 6개 들어선다. 현재는 1~3라인이 가동 중이다. 첫 생산라인 가동 후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등 총 8만여 명의 근로자가 평택시에 상주하고 있다. 올해 말에는 1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지역 경제 파급효과도 크다. 삼성은 2030년까지 생산유발효과는 550조원, 고용인원은 13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택시 관계자는 "카이스트, 아주대병원, 국제학교 등 상주 인구의 주거 여건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가 구축되고 있다"면서 "인구가 늘며 지역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도 2004년 삼성디스플레이 액정표시장치(LCD) 제조 공장이 들어선 뒤 지역 경제가 살아난 사례다. 삼성 유치 후 아산시 인구는 20만명에서 지난해 33만5000명으로 무려 67.5%가 불어났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는 LG가 전기차(EV) 배터리 공장을 2011년 완공해 배터리 사업의 중심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10만명도 안 됐던 청원구는 인구 20만명을 바라보는 지역 거점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하지만 대기업 유치가 성사된 이들 지역은 소수 사례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저출생, 고령화 추세에 지역 경제를 먹여살릴 산업마저 사라지며 전국 228개 시·군·구 중 59곳(25.9%)이 소멸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 지역 59곳에는 농어촌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과 광역시 등도 포함됐다. 경기(가평·연천), 인천(강화), 부산(서구·영도구), 울산(동구) 등 산업 기반이 잠식된 대도시 인근 지역이 대거 소멸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지방 경기 침체에 따른 지역민의 불안감도 상당하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역 경제에 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지방에 살고 있는 국민 절반(49.4%)은 '앞으로 우리 지역이 사라질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예상 소멸 시기는 '20년 이내'가 64%에 달했다.

허문구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장은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지자체도 기업을 유치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거나 주민소득이 높아지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결국 기업 유치 등 생산 증대 전략을 통한 지방 발전 체계를 짜는 게 필수"라고 설명했다.

[부산 박동환 기자 / 평택 김정환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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