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시대 생존법 … 한국만의 '필살기' 여러 개 있다
◆ 과학의 날 특별대담 ◆
외국에서도 이름만 들으면 알아주는 한국의 과학자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학자에 가깝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와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이 교수는 바이오테크, 현 교수는 나노테크 전공이다. 이 분야의 나름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석학에게 두 사람의 이름을 대면 "나 그 사람 안다(I know him)"는 즉답이 나온다. 긴 이력서가 필요 없다. 원래 노벨상 받는 사람들이 그렇다. 주절주절 늘어놓으면 하수다. 무슨 연구를 했다, 어떤 기여를 했다, 이렇게 한 줄이면 된다. 그 '무슨', 그 '어떤'이 확실하다. 이 교수는 '시스템 대사공학을 창시하고 미생물을 이용해 다양한 화학물질, 연료, 플라스틱 등을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는 기술개발'이며 현 교수는 '나노기술 상용화에 필수인 균일한 나노입자 대량 생산 방법인 승온법 개발'이다. 전문 용어가 나열돼 있어 어렵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말이다. 잘하는 건 딱 하나, 연구다. 정말 기차게 잘한다. 회사를 차리거나 기업으로 갔으면 수백억 원을 벌었을지 모르지만 그다지 많지 않은 연봉을 받는 학교에 교수로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을 곱하기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회사를 했으면 1개를 잘할 수 있었지만 제자를 100명 키우면 100개 회사가 잘될 거라는 소신과 신념에서 택한 직업이다. 현 교수는 윤석열 정부로부터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제안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안다"면서. 이 교수도 행정직을 맡긴 하지만 그보단 연구가 적성이다. 부총장 직함에도 그 앞에 '연구'라는 말이 붙었다. 일종의 타협.
'과학의 날'을 맞아 매일경제신문이 대한민국 간판 과학기술인인 두 교수와의 대담을 기획했다.
향후 연구 계획과 미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두 교수 모두 학문과 연구의 출발점은 인류애였다. 본인의 전공을 확장시켜 결국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담대한 포부였다.
이상엽 교수=기후위기가 가장 큰 문제다. 이는 과학이 인류를 위해서 해결할 수 있는(can) 문제를 넘어 해결해야 할(must) 문제다. 우리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정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지구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 망가진다면 다른 수많은 노력들이 다 소용없다.
현택환 교수=기존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했던 난치병을 고치고 싶다. 나노기술로 가능한 부분이 있다.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돼 그분들의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연장시킨다면 더 없는 보람이다. 나노기술은 산업 현장에서 필수적인 물질을 친환경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쪽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연구가 두 교수 당대에 마무리될 리가 없다. 그들의 연구를 이어갈 제자가 필요한 이유다. 이들은 "교수라는 업(業)의 최종 목표는 제자"라는 데 동의한다. 제자를 지도하는 데 있어 두 교수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현 교수는 제자들 사이에 '눈물의 참치초밥'이라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참치초밥을 시켜놓고 밤을 새워서라도 논문을 지도한 이야기. 그 참치초밥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린 제자가 많다(2022년 6월 8일자 손현덕 주필의 사람과 현장 참조).
이 교수의 경우 이른바 '미래 이력서'가 있다. 이 교수는 신입생이 들어오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65세까지의 미래 이력서를 받는다. 언제까지 뭘 이루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것을 할지 적으라고 한다. 중요한 문제들을 찾는 방법과 실제 그 문제들을 풀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고자 함이다.
이들이 제자들 기르는 데 남다른 열정을 기울이는 까닭이 있다. 과학이라는 게 결국 앞으로 살아갈 후손들, 인류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이 인류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답이 비슷했다. 이 교수는 "절대적으로 기후위기"라고 말했고, 현 교수는 "매우 복잡하지만 결국 인류의 지속성에 관한 문제"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질문은 "향후 10년 내에 등장할 만한 눈길을 끌 만한 기술은 어떤 것일까"였다.
이 교수=몇 가지만 꼽자면 인간의 뇌와 같이 작동하는 브레인AI,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저장 용량을 갖는 배터리 또는 배터리를 대체하는 에너지저장장치, 유전병 교정 기술, 수명 연장 기술 또는 노화 저감 기술, 인체·로봇 보조 시스템의 보편화 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 교수=의료 분야에서 다양한 암 치료 기술이 나올 듯하다. 암세포를 아주 초기에 발견해 그 자리에서 바로 제거하는 테라그노시스(치료를 뜻하는 '테라피(therapy)'와 진단을 뜻하는 '다이그노시스(diagnosis)'의 합성어) 기술이 환자에게 적용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백신으로 활용됐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암백신으로 발전해 다양한 암 치료에 적용되고 심장질환 치료에도 혁신적인 방법들이 도입될 듯하다. 사람 심장과 가장 유사한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방법이 확실하게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되고,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공심장이 개발·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원이 인류가 당면한 에너지위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연구된 무궁무진한 태양광을 이용하는 거다. 특히 햇빛을 이용한 광촉매 반응으로 물을 분해해서 가장 청정한 에너지인 수소를 대량 생산해 에너지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예상한다.
손현덕 주필(사회)=그렇다면 어떤 기술이 우리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까.
현 교수=의료·헬스케어 관련 기술이다. 인간 수명이 단순히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교수='딱 이거'라고 하기 쉽지 않고, 위에서 말한 기술들이 거의 유사하게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브레인AI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학습, 지식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 직업 등 모든 것이 다 변한다. 에너지저장장치도 마찬가지다. 지금 로봇이나 전기차나 에너지 문제로 한계가 있다. 유전병 교정 기술 등은 수많은 장애와 선천적 질환의 극복을 가져올 것이고, 노화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인간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곁다리로 "가장 돈이 되는 기술은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교수는 "브레인AI, 차세대 에너지저장장치, 노화 저감 기술"이라고 답했고, 현 교수는 "단연코 의료·헬스케어 분야"라고 말했다. 건강과 수명에 관한 한 예외가 없었다. 화제를 돌려 기술과 국가안보에 대해 물었다.
손 주필=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과학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추진해야 하는가.
현 교수=큰 틀에서 패권 경쟁에 놓여 있는 핵심 분야라고 하면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인 것 같다.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선도하는 입장에서 경쟁하는 분야이고, 나머지 두 분야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미국은 핵심 품목들을 자국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추구하면서 최근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영업비밀 공개, 중국 투자 축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핵심 원자재를 중국에 많이 의존하는데, 그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전략은 위험하다. 핵심 분야의 기술력을 높이는 게 중요해졌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의 가치를 전 세계가 인정하면 강대국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협상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자체적인 연구개발과 산학 협력 투자를 늘리고, 인재 육성에 힘써야 한다. 그러면 보조금 같은 수단에 쉽게 유혹되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교수=우리만의 '무엇'이 중요하다. 나는 이것을 영어로 'NFTIPS(Non-Fungible Technology, Industry, Products, Service)'라고 한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산업·제품·서비스를 확보하는 게 필수다. 발상의 전환을 하자면 K푸드도 좋은 NFTIPS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냥 푸드가 아니라 몸에도 좋은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우리가 쫓아가기 힘들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세계 표준을 정하고 있어서 주도권을 뺏는 게 쉽지 않다. 2조~3조원씩 투자하는 일이 다반사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미국은 무려 22조원을 투자했다. 우리는 고작 2800억원. 신약 개발 경쟁이 제대로 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이른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예방의학, 생활의학이다. 약식동원은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 간 상호 작용, 음식과 약품 간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이번에 코로나19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만 해도 복약 중에 먹지 말라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런 부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하는 건데, 이 분야에서는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 우리만의 NFTIPS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주필='우리만의 것' 하면 일반적으로 머릿속에는 반도체, 그중에도 D램인데.
이 교수=반도체를 하더라도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인공지능(AI) 전용으로 할 수 있는 반도체 같은 걸 해야 한다.
현 교수=반도체는 모든 기술의 집약체라고 불리는 만큼 소재, 공정, 설비 등 선폭과 각 레이어에 적용되는 모든 기술에 대한 총체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기업 간의 약간의 기술 격차라도 성능과 효율성은 천차만별인데, 이는 바로 시장에서 소비자 반응으로 나타나고 기업 매출에 굉장한 타격을 준다. 그래서 좋은 인재를 계속 확보해야 한다.
배터리는 니켈·코발트·망간(NCM)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한국에는 이와 관련한 양극재 핵심 원천 기술을 보유한 연구진이 있고, 해외에서도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터리의 내구성과 안전성이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가격경쟁력 못지않게 내구성과 안전성을 한층 높인 고품질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는 데 미래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양자 기술, 우주 관련 기술도 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우주와 관련해 KAIST에서 우리가 뭘 제안했느냐 하면 '우리별 1호 귀환 작전'이다. 우리별 1호가 지금 30년 됐다. 아주 오랫동안 나름의 역할을 했고 지금 우주 미아로 떠돌고 있는데 이를 데려오는 작업이다. 쉽지 않다.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다. 일단 우주로 물체를 쏴 보내고, 그 물체가 우리별 1호를 포획해 무사히 귀환시켜야 하는데 대기권에 진입하는 게 숙제다. 그러려면 우주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해야 한다. 우주공학 영역이 아니라 재료공학의 영역일 수 있다.
대담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으로 이어졌다. 인재가 이공계로 가지 않고 의대로 몰리는 현실, 유능한 과학 인력이 60세만 넘기면 현장을 떠나는 상황, 연구개발 예산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쏟아붓는데 기술개발이 안 되고 상용화는 더더욱 안 되는 시스템 등등. 이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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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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