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서울 밖에서 개척하는 미래
지방의 노화와 위축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인구 고령화에 더해 청년층의 지속 유출이 지역경제 쇠락과 공동화라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전국 시·군·구 2곳 중 1곳이 소멸 위험에 처했다. 이대로라면 20년 후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전국이 소멸 고위험 단계에 들어선다는 암울한 예측까지 나온 상황이다. 그 반대편에는 전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수도권 블랙홀 현상이 있다. 인구의 절반이 국토의 12% 남짓한 수도권에 쏠리면서 주거·혼잡 비용이 급격히 치솟는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가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목표로 천명한 배경이다.
과거에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 수도권 과밀화와 지역 소멸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진 못했다. 하드웨어적 처방의 한계다. 물론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지역 자생력을 북돋아줄 근본적인 묘책이 필요하다. 필자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선 청년들이 지방에서 지속가능한 삶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해결책의 요지는 지역 고유의 특화 산업을 토대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역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선결 조건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핵심 기술의 확보다. 연구개발의 주체는 연구소와 대학이 맡되, 지역 기업도 이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기술집약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지자체는 이런 노력을 지원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하겠다. 기업-연구소-대학-지자체의 사각 협력이 만든 과실이 지역의 정주 여건과 문화, 환경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혁신 생태계를 상상해본다.
더불어 인재들이 지역 내에서 역량을 쌓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자체의 학비 지원, 기술력을 갖춘 지역 기업에의 취업을 연계한 실무 교육,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의 참여 등 특화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울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해야 한다. 연구소나 기업도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주어야겠다. 젊은 인재들이 구직의 남방 하한선으로 여긴다는 소위 '판교라인'을 넘어설 수 있도록 지역 일자리의 매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서울'이 아니면 뒤처지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의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지방을 얘기하면 그곳만의 첨단 기술과 산업 기반이 떠오르고, 수도권보다 여유 있는 정주 환경과 나름의 비교 우위를 갖춘 곳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들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고향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겠다.
조금만 찾아봐도 개척되지 않은 잠재력을 가진 지역들을 금세 떠올릴 수 있다. 130여 년 전 영국의 지리학자 이저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을 여행하며 '조선의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과학기술이 도화선이 되어 '지방시대'가 활짝 열리고, 미래 세대의 꿈이 서울 일변도를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향하길 기원한다.
[윤석진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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