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 찾은 이병헌 “‘기생충’, ‘올드보이’ 출연 못한 것 후회했다”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2023. 4. 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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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이 1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맥카우홀에서 열린 '한류의 미래'(The Future of Hallyu) : 글로벌 무대의 한국 영화' 콘퍼런스에서 배우가 되기까지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스탠퍼드대 APARC 제공/연합뉴스

“올드보이, 기생충, 헤어질 결심.”

영화배우 이병헌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명문 스탠퍼드대에 나타났다. 19일(현지 시각) 스탠퍼드대 매카우홀에서 열린 ‘한류의 미래: 글로벌 무대의 한국 영화’ 콘퍼런스에 발표자로 등장한 것. 그는 “역할을 놓쳐 후회되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 작품을 열거하며 “일급비밀이다. 미리 잡힌 스케줄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했다.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가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한 이 행사에는 스탠퍼드대 학생과 한국학 연구자 등 300여 명이 모였다.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인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는 “그동안 한국 연구는 한국 경제, 북한 문제에 치중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진 상황”이라며 “한국 연구도 관심이 많은 K문화 등을 다루는 수요 중심 연구를 해보자는 취지로 행사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배우 이병헌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별에서 온 그대’ ‘넝쿨째 굴러온 당신’ 같은 흥행 드라마를 쓴 박지은 작가가 참석했다. 이병헌은 유창한 영어로 어린 시절 부친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를 본 기억부터 영화배우로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을 설명했다. 그는 “출연한 4편의 영화에서 연거푸 흥행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역시 두번이나 이전 작품 성적이 좋지 않았던 영화 관계자가 시나리오를 건넸다”면서 “그 사람이 박찬욱 감독이었고, 그 대본이 공동경비구역 JSA였다”고 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2000년 개봉해 관객 580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병헌은 “영화 JSA를 통해 영화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면서 “이전에는 연기하는 캐릭터에 더 신경 썼다면 이후로는 스토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2009년 영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계기도 소개했다. 그는 “’왜 나를 캐스팅했느냐’고 물었더니, ‘도쿄돔 팬 미팅에 4만명이 몰린 것을 보고 캐스팅했다’는 말이 돌아왔다”며 “내 연기를 본 것이 아닌 아시아 시장을 노린 것이었고, 이후 촬영을 하면서 연기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이병헌은 또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은 수많은 계획에 따라 불확실성을 없애는 시스템”이라며 “반면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은 대본이나 계획이 경우에 따라 바뀌며 유연하고 효율적이다. 이러한 특성이 K콘텐츠를 매우 강력하고 독특한 것으로 만든다”고 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한류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한국 배우와 스태프들의 재능과 실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기회가 생겼다”고 답했다.

스타 작가로 유명한 박지은 작가도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쓴 ‘사랑의 불시착’은 넷플릭스에서 ‘크래시 랜딩 온 유(Crash landing on you)’라는 이름으로 방영됐고,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북한 모습을 그린 사랑의 불시착 대본을 쓰면서 탈북자 50여 명은 만난 것 같다”며 “정확한 북한 말을 대본에 쓰기 위해 탈북자 출신 영화 관계자를 초빙해 한 달 반 함께 생활하며 그가 쓰는 단어들을 수첩에 적어 벽에 붙였다”고 했다. 그는 “이 드라마는 남과 북의 역사적 배경과 분단 민족으로서 느끼는 정서를 다뤄 해외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반응이 나왔다”며 “한국 시청자들의 기준이 워낙 높기 때문에 한국 시청자의 기준과 취향에 맞춘 콘텐츠가 글로벌에도 통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콘퍼런스에는 한국학 연구자들이 한류의 인기 비결을 토론하는 시간도 있었다. 김주옥 텍사스A&M국제대 교수는 “한류는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며 “1990년대 일본에서 겨울연가 열풍이 불었고, 그 열풍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이제 미국과 남미로 확대된 것”이라고 했다. 다프나 주르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국 창작자들에겐 뛰어난 콘텐츠 재능이 있고, 빠른 최첨단 기술 습득력이 있다”며 “특히 콘텐츠 부재에 대한 해소 욕구가 있어 새로운 형식과 플랫폼을 차용해 콘텐츠를 만든다. 한류의 다음 모습이 어떨지 정말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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