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한류 팬이 한국 팬이 되려면
보편적 가치와 외교로 성립
한류가 바로 국력은 아닌것
한류속 민주적 가치 조명되면
진정한 한국팬들이 생겨날것
지난달 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 회의에 모인 각국 장관들은 난타와 아리랑 합창공연을 즐겼다. 이에 앞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공연을 소개하며 세계를 매료하는 한류와 한국 문화에 대한 배경이 한국에 꽃핀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민주주의 회의이니 억지로라도 연관을 지을 수 있겠지만 그 논리를 들으면서 한류에 대한 근본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류는 한국의 귀한 문화상품으로 지금은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문화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상품의 인기는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그 나라의 정치, 외교, 경제 정책을 지지하게 되는 소위 소프트파워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국제 무대에서 영향이 훨씬 크고 현 정부가 지향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가 벌써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국력만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위 'Punching Below Its Weight' 국가로 알려져 있다. '오징어 게임'과 BTS가 아무리 인기가 있더라도 그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한류 팬이 한국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진정한 한국 팬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프트파워의 현대적 개념을 처음 정리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는 매력적인 문화뿐 아니라 보편적인 지구적 가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뛰어난 문화를 갖고 있지만 보편적 가치와 이를 위한 외교정책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 문화의 배경에는 자유,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이를 외교정책으로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인에게는 오래전부터 권위와 부정에 도전하는 민중의식이 있었고 이것이 우리의 민요나 민화로 대표되는 전통문화로 이어졌다. 양반의 비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해학극, 탈춤 등의 배경에는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적 자유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주의 투쟁의 결과로 대중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검열이 사라지고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며 개개인의 창의성이 발현되었고 이것이 수준 높은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등으로 나타났다. 독재 시절 금지되었던 주제나 소재들이 자유롭게 다뤄지며 정치나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대중문화가 싹텄고 이제는 전 세계인에게 어필하는 민주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에서 표현되는 비판적 메시지는 더 이상 한국 사회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날 현대사회의 맹점에 대한 공격이다.
한국 문화와 한류 성공의 배경이 되는 민주주의 자유정신은 이웃 국가와 비교하면 자명하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중국에서 이러한 문화가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일본 역시 한계가 있다. 우리의 시끄럽지만 역동적인 민주주의에 비교해 조용하지만 다소 맥 빠진 일본의 민주주의에서 창의적이고 에너지 가득한 대중문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한국 문화에 담긴 민주적 가치를 우리 외교의 자산으로 삼는다면 한국은 국력 이상 능력을 발휘하는 'Punching above Its Weight'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류 팬이 많은 국가에서 한류 뒤의 민주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이를 통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신장에 기여한다면 진정한 한국 팬이 생겨날 것으로 생각된다. 즉 문화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오징어 게임' 후속작이 성공하지 못해도, BTS가 해체되어도 그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손지애 이화여대 초빙교수·외교부 문화협력대사]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속보] 서세원 사망, 캄보디아 병원서 링거 맞다 심정지 - 매일경제
- 아스트로 문빈 사망…자택서 숨진채 발견 - 매일경제
- ‘골초’ 김정은의 딸 김주애 활용법…고모 따라 재떨이 시중 - 매일경제
- 카푸어도 타는 벤츠·포르쉐 지겨워서…“이름이 뭐예요” 궁금증 폭발[세상만車] - 매일경제
- “7년 지났는데 400만원 받았대”…오래된 사고 보험금 청구해볼까 - 매일경제
- 대기업 맞벌이마저...“아이 안 낳아요, 가난 물려주기 싫어서” [매부리레터] - 매일경제
- “예의 없으니 재수나 하고 자빠졌다”... 유명 입시학원 강사 막말 - 매일경제
- “노재팬 다음은 노제주?”…입도세에 불매운동 이뤄질까 - 매일경제
- 줄줄이 20억 회복 ‘엘리트’...“집값 바닥” vs “아직 일러” - 매일경제
-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 복귀 고려 안 한다 [EPL]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