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늑장 대책’ 줄줄이 나오지만… 피해자 구제책으론 역부족
전문가들 “공공매입 역시 근본 대책 아니다”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의 일환으로 경매 유예와 세입자 우선매수권 등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근본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를 구제받는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채권이나 공공매입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았으나, 이마저도 후순위 임차인이 많은 세입자에게 돌아갈 혜택이 적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로 확인된 2479가구 주택 경매가 이날부터 유예된다. 피해자 중 은행권과 상호금융권 등에서 보유 중인 대출분에 대해서는 즉시 경매를 유예하도록 협조를 구할 계획이다. 또 구체적으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대출 규제를 한시적으로 예외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에 대해 근본적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세사기에 연루된 주택이 대부분 다세대·연립주택 등 빌라인만큼 은행보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일 가능성이 높다. 제2금융권 중에는 이미 건전성이 우려되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 근저당권을 가진 일부 상호금융회사의 건전성 지표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을 살펴보면 7%~15%대에 달하는 곳도 있다. 통상 5% 이하일 경우 양호하다고 평가된다.
게다가 부동산 하락장이 지속되면서 경매를 유예할 경우 집값이 하락하면 오히려 세입자가 돌려받을 돈이 적어질 위험도 있다. 통상 전세사기로 인해 경매에 나온 매물은 2~3회 유찰 후 낙찰되는데, 떨어진 주택 시세에 적어진 낙찰가, 또 선순위 임차인에게 우선 배당금이 돌아가면 후순위 임차인인 세입자가 돌려받을 돈은 더욱 적어진다.
정부가 검토 중인 경매 우선매수권 역시 한계는 있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후순위 채권자라는 전세사기 사건 매물 특성상 선순위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구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피해자 대부분이 전세대출을 안고 있는 상황이어서, 우선매수권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공공매입 역시 근본 대책은 못 된다. 정부가 싼값에 피해 주택을 매입해 세입자들이 기존 거주지에서 살 수 있게 하자는 방안이다. 하지만 미추홀구 등 상당수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우 선순위 담보 설정이 최대 한도로 돼 있어 공공이 매입해도 피해자에게 갈 돈이 없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희룡 장관도 “선순위 채권자만 좋은 일이고, 피해자 지원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부동산 전문가들 역시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의견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채권을 매입하거나 부동산을 공동 매입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는 하지만, 근저당권자를 보호해 주게 된다는 점에서 형평성에 어긋나는 사례”라면서 “우선 매수권 역시 세입자 입장에서도 어차피 돈이 더 들어가 실효성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또 애초부터 보증금을 편취할 의사를 가지고 있어야 사기가 성립되는데, 이런 사건들은 사실 갭투자가 실패한 사례”라면서 “형사적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논란이 상당히 많을 수 있다”고 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도 “경매 유예나 LTV, DSR 규제를 예외로 적용하는 것도 근본적 대안은 아니다”라면서 “대출 규제의 경우 기존 전세 대출이 있는 상황에서 또 빚을 져야 하는 이중고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다만 앞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사전 방지책을 마련할 수는 있다는 의견도 있다. 고 대표는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 등에 대해서는 선순위 권리가 있으면 전세 계약을 못하게 막는 방안이 있다”면서 “감정평가사에 의해 평가를 받은 시세 금액에서 전세가를 50% 정도로 제한하는 전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부동산 시장이 출렁거려도 전세금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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