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기자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묻다
(지디넷코리아=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풍경 하나]
19세기 미국에서 정치부 기자를 하려면 누구보다 기억력이 좋아야 했다. 미국 의회가 회의장 안에 필기도구를 휴대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계속되는 회의를 듣고 기억한 뒤 기사로 정리해내야 했다.
그 이후 미국 의회가 점차 필기를 허용하면서 ‘원초적인 기억력'의 중요성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자 한 때는 ‘속기 능력’이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기억력'이나 '속기 능력'은 기자의 경쟁력을 가르는 필수 자질은 아니다. 녹음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기들로 모자란 기억력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풍경 둘]
1990년대 언론사엔 조사부 기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면 빠른 속도로 관련 자료를 찾아줬다. 인사철엔 조사부 기자들이 모아 놓은 스크랩 자료들을 활용해 인물 분석 기사를 쓰곤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은 그 당시 조사부 기자들이 담당했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기자들은 많지 않다. 검색 한 번이면 필요한 자료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기자들과 30년 전 기자들은 일하는 방식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기술이 기자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요건을 엄청나게 바꿔놨기 때문이다.
[생각 하나]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 생활을 많이 바꿔 놓는다. 하루 하루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1990년대 중반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2023년 현실을 접하면 어떻게 될까? 영화 ‘백 투더 퓨처’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달라진 사회상에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까?
기자들은 매일 기술이 사회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혁신을 이야기하고, 혁신 부족을 비판한다. 하지만 막상, 기술이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은 그 어떤 분야보다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풍경1과 풍경2에서 볼 수 있듯, 기술은 기자들의 일하는 방식과 저널리즘의 기본 개념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생각 둘] 우리 앞에 닥쳐온 챗GPT
챗GPT가 대세다. 미국에선 의사, 변호사 시험까지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어지간한 직종은 거의 모두 챗GPT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무서운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챗GPT는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자들의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바꿔놓을까?
인공지능(AI)은 저널리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 때 유행했던 로봇 저널리즘도 따지고 보면 AI 기술을 활용해 기사 생산을 자동화하려는 시도였다.
최근 10년 간 AI는 저널리즘 영역으로 조금씩 파고 들어왔다. 이와 관련해선 프란체스코 마르코니가 꽤 설득력 있는 분석을 내놨다. 마르코니는 실시간 정보 서비스 어플라이드XL 창업자다.
그는 AI가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을 3단계로 분류했다.
첫째. 자동화 시대. 주로 스포츠 경기나 경제 지표, 기업 실적 기사를 자동처리하는 방식이다. 한 때 국내에서 유행했던 로봇 저널리즘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증강 보도(augmenting reporting). 머신러닝이나 자연어처리 기술을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숨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데 활용됐다. 역시 국내외 언론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던 데이터 저널리즘이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 생성 AI를 활용한 기사 작성. 로봇 저널리즘이나 데이터 저널리즘이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해서 기사를 만들어냈다면, 대용량 언어모델(LLM)을 학습한 생성 AI는 ‘인간 기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AI가 이전의 AI 기술과 다른 점은 뭘까? 이와 관련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소비자 친화적일 뿐 아니라, 자연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생성AI가 좀 더 폭넓게 활용되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서 흔히 보는 기자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면서, 그들보다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가진 AI 기자가 등장한다는 의미다.
[생각 셋] 챗GPT 시대, 저널리즘의 미래는?
이런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인간 기자’가 설 자리는 남아 있을까? 여전히 기자와 저널리즘의 미래는 밝은 것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 누구도 해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챗GPT 시대엔 ‘진실과 거짓’을 제대로 가리고, 사실 확인을 해주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챗GPT를 비롯한 생성AI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작업을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건 챗GPT 전 단계 AI 활용 저널리즘의 성과를 되짚어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기자, 혹은 저널리즘의 근본'에 대해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자면 이렇다. 지금 기자들이 하고 있는 일 중 상당 부분은 AI가 대체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 때 유행했던 로봇 저널리즘은, 기자들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을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 점에선 생성 AI도 마찬가지다. 방대한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면에선 인간이 생성 AI에 한참 못 미친다. 그 문법으로 경쟁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따라서 앞으로 기자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뛰어다녀야 할 지도 모른다.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기사를 좀 더 많이 써야한다는 의미다.
취재원의 이야기를 단순히 옮기는 ‘따옴표 저널리즘(he said/she said journalism)’도 극복해야 할 관행이다. 기자들은 앞으로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기자는 (사안에 따라선) 부모가 한 말도 곧이 곧대로 옮겨선 안 된다”는 저널리즘의 케케묵은 농담(?)도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할 것 같다.
챗GPT를 활용해 애매모호한 정보를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전통적인 기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래야만 챗GPT 시대에도 여전히 기자들이 설 자리가 남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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