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해지는 한·러관계···러 진출 차·전자 ‘발 동동’, 초코파이는 느긋

박순봉·구교형·노도현 기자 2023. 4. 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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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철수 가능성 커진 현대차
가동중단 공장 매각도 쉽지 않아
삼성전자·LG, 지역 매출 반토막에
대통령 발언까지 ‘엎친데 덮친 격’
러시아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오리온 초코파이를 고르고 있다. 오리온 제공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우크라이나전쟁 관련 후폭풍으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상황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나빠지고 있어서다.

당장 새로운 충격이 감지되지는 않지만, 업종별로 영향은 다르다. 현대차그룹은 그렇잖아도 힘든 상황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일찌감치 자리잡은 식품기업 등은 당장 큰 걱정이 없지만 관계가 더 험악해질 경우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러시아의 관계 악화의 압박을 가장 전면에서 받고 있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18개 법인을 러시아에 두고 있다. 현대차의 올해 1분기 러시아 판매량은 총 800대다. 1월에 200대, 2월에 250대, 3월에 350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1분기에는 3만520대를 판매했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는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 운영도 중단했다. 지난해 1~2월에 생산하고 남은 차를 판매하는 상황으로, 추가 생산, 판매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의 러시아 시장 철수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그룹 공장의 가동중단 상태는 13개월째 이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당장 공장 매각도 쉽지 않다. 현대차는 지난달 10일 공장 매각설이 나오자 공시를 통해 “현대차 러시아 공장에 대해 다양한 처리 방안을 두고 검토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로)가동을 재개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며 “현실적인 공장 처리 방안은 매각이지만 전쟁 중이라서 현지에서 매각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안다”고 말했다. 철수도, 잔류도 힘든 상태인 셈이다.

전자업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 현지 공장에서의 생산과 임직원들 업무가 사실상 중단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쟁이 발생했을 때부터 주재원이나 현지 직원이 재택 또는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며 “공장 역시 가동 중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업 재개에 대비해 현지 거래선을 유지하며 고객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를 비롯한 CIS(독립국가연합) 지역 매출이 예년해 비해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까지 더해져 더 걱정이 커진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재진입에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철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면서도 “예상치 못한 악재까지 돌출해 긴장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식품기업들은 자사 제품들이 러시아인들의 일상에 자리잡은 상태여서 별다른 지장을 받고 있지 않는 상태다.

러시아 진출 대표격인 오리온과 팔도는 지난해 전쟁 발발에도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1993년 러시아 시장에 출시된 오리온 초코파이는 현지에서 ‘국민 간식’으로 통한다. 14종으로 다변화를 시도하고 신공장을 가동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판매 호조를 보였다.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오리온 러시아 법인 매출은 전년보다 79.4% 증가해 매출액이 2098억원에 달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워낙 오래 전에 현지 시장에 진출했고 내수기업으로 자리잡은 만큼 전쟁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서도 “현재 사업 운영에는 지장이 없지만 향후 상황 악화에 따른 대응방안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1991년 팔도가 러시아에 처음 선보인 컵라면 ‘도시락’은 현지 용기면 시장에서 60%나 점유율을 차지한다. 지난해 팔도 러시아법인의 도시락 6종 매출은 전년보다 2.9% 올랐다.

팔도 관계자는 “도시락이라는 라면 브랜드가 현지에선 국민 브랜드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오랫동안 시장에서 사랑받았기 때문에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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