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다 달렸네...” 2000% 수익 인증샷에 ‘코닥둥절’ 증후군 [왕개미연구소]

이경은 기자 2023. 4. 20. 16: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34% 상승하며 전세계 1위 찍은 코스닥지수
코스닥 개인 매수금액 6조 중에서 절반은 빚
[왕개미연구소]

“경기 전망도 나쁘고 해서 코스닥은 금방 꺾일 줄 알았는데...”

코닥둥절(코스닥 세계 1위+어리둥절) 시대를 맞아 개인 투자자 간에 온도차가 커지고 있다. 올해 코스닥지수는 19일까지 34% 상승해 전세계 주요국 증시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형님격인 코스피 상승률(15%)을 압도하는 건 물론이고, 미국 나스닥지수(17%)와도 격차가 크다.

올해 1분기 증시에서 ‘코닥둥절’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개미들이다. 연초부터 지난 19일까지 코스닥 시장에서만 5조4000억원 어치 주식을 샀고, 20일에도 5400억원 어치 주식을 사모았다.

코스닥 시장은 20일 기준 전체 시가총액이 420조원으로, 코스피(2022조원)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은 중소기업 상장사들이 대부분으로, 비즈니스 성숙도가 아직 높지 않은 곳”이라며 “개인 순매수 금액이 5400억원이라는 말은 코스피에서 2조5000억원 넘게 주식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개인들은 코스닥 시장에서 특히 2차 전지 종목에 집중 베팅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들의 코스닥 순매수 상위 7개 종목은 전부 2차 전지 관련이었다. 개인들이 2차 전지 관련 코스닥 종목에 넣은 돈은 모두 3조1145억원(TOP7 기준)이었는데, 이는 전체 코스닥 순매수 금액의 58%에 달한다.

가뜩이나 유동성이 마른 상황에서 특정 종목으로만 돈이 쏠렸기 때문에 주가는 거침없이 올랐다. 유튜브에서 특정인이 적극적으로 몇 개 종목을 홍보하면서 자금 쏠림은 더욱 가속화했다. 호재가 있더라도 단기간 주가가 지나치게 급등한 종목에는 공매도(주가 하락에 베팅)가 끼어들고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이런 주식 시장의 ‘국룰’도 통하지 않았다. 이달 기준 코스닥 시장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은 역대 최대인 3585억원을 기록했다.

개인들의 최애 종목인 에코프로는 연초 이후부터 지금까지 450% 급등해 그야말로 ‘인생역전 끝판왕 주식’으로 떠올랐다. 2위인 에코프로비엠 역시 200% 넘게 올랐고, 나노신소재 역시 올해 상승률이 100%에 육박한다.

지난 10일 한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 올라온 에코프로 주주의 계좌 수익률 인증샷. 이날 에코프로 종가는 72만2000원이었고, 다음날인 11일에는 82만원까지 올랐다.

1분기(1~3월) 주식 투자 성과는 2차 전지 주식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가 갈랐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흙수저인데 에코프로로 10억 벌어 퇴사하고 내 오랜 꿈인 식당을 차리려 한다’, ‘2000프로 달성~ 에코프로 임직원분들 감사드립니다’는 등 온갖 인증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전부 포모(FOMO·나만 혼자 소외되는 불안) 증후군을 유발하는 내용들이다. 주부들이 모여 있는 맘카페조차 “이제 꺾이겠지 하면서도 2차 전지만 계속 오르는데,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느냐”는 질문글이 가득하다.

코스닥이 오르면 오르는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개인 매수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20일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2.6% 하락해 900선이 깨져 885.71에 마감했다. 하지만 이날도 개인들은 코스닥 시장에서 5400억원 어치 주식을 사모으며 방어에 나섰다. 50대 회사원 A씨는 “총알이 다 떨어져서 더이상 주식을 살 수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총알이 어디서 이렇게 계속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주식 살 돈은 어디에서 오는가 궁금하겠지만, 올해 코스닥 매수 금액의 절반은 ‘빚’이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개인 코스닥 순매수는 5조4000억원인데 신용융자 증가액이 2조6000억원으로 48%를 차지한다”면서 “ 코스닥을 좋게 보고 리스크 테이킹(위험 부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지만 그만큼 과열 징후가 있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닥 신용잔고 추이 그래프(위)를 보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울기가 아찔하다.

실제로 2020~2021년과 비교하면, 코스닥에서 투기성 베팅 징후는 더욱 뚜렷해진다. 20일 신영증권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코스닥 개인 순매수 금액은 각각 16조3000억원, 10조9000억원이었다. 하지만 빚투 증가분은 각각 4조4000억원, 1조4000억원에 불과했다. 은행에서 돈을 빼내서 증시로 가져온 이른바 ‘순수한 현금 매수’가 많았다는 의미다.

에코프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최대 주주인 이동채 상임고문의 주식 평가액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보다 많아졌다. CXO연구소에 따르면, 이 고문의 주식 재산 평가액은 지난달 말 기준 2조5031억원이었다./뉴시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스 전문위원은 “은행 손실에 따른 대출 축소, 기업 이익과 소비자 구매력 감소, 지정학적 긴장감 등 금융시장에 변동성을 유발할 요인들이 꾸준히 쌓이고 있는데 아직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며 무시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면서 “이런 변수들은 파괴력이 크기 때문에 과도한 빚투나 이익 창출력이 부족한 기업에 대한 투자는 서서히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