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대담] “우수한 연구결과 상업화 위해서는 건전한 벤처 캐피탈이 있어야”
60세 넘어서도 오히려 연구 성과 늘어
연구 인력 정년 연장 문제 해결해야
좋은 자본, 원천기술 산업 현장 활용가능
과학의날을 맞아 진행된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와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와의 대담은 과학기술인으로서의 꿈은 물론 미래의 과학기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 등에 대해 폭넓게 이뤄졌다. 실제 대화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 이어서 이상엽-현택환 대담 (2)
△이상엽 교수(이하 이)= 의대 쏠림 문제는 결국은 과학기술인 처우 문제가 크죠. 의사와 비교해서 처우가 좋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현재 젊은 세대들은 이런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죠. 처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고요. 출산율은 과학계에서도 크게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한 해 20만명이 태어날 때 몇 명이 과학자 또는 공학자가 되겠습니까. 결국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지금 있는 분들을 잘 대우해서 그 분들의 정년 후를 활용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어요. 우선적으로 정년 후를 활용하고 그 후에 출산율이 높아지면 다른 방안들을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현택환 교수(이하 현)= 바깥에서 유능한 인력을 데리고 오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언어장벽이 굉장히 심합니다. 주변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출신 연구원이 있는데 한국어를 잘 안 배웁니다. 다음으로는 교육도 문제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으로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외국인 학교에 보낸다고 할 때 학비가 어마어마합니다. 한국인도 돈이 그렇게 드는 데 외국인들은 더하죠. 유능한 인재를 해외에서 유치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예요. 이는 사회구조를 개조하는 작업입니다.
△이=재밌는 예가 하나 있는데 카이스트가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잖아요. 보통 테뉴어(종신재직권)를 받으면 그 때부턴 더 이상 연구 안하고 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광형 총장이 오자마자 교수들에 대해서 성과 조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60세가 최고 정점이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65세 정도가 되면 꺾이는데 이것도 학생이나 연구비 등이 지원이 안 되서 그런 거예요. 결론은? 본인 원하면 정년 후 교수 자리를 보장해주는 게 답입니다.
△현= 저도 그 부분에서 시스템이 완전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항상 하는 농담이 70세 테니스 열심히 치고 그 체력으로 연구하겠다는 말하거든요.
△이= 우리나라 국보가 그렇게 몸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웃음). 어쨌든 전 연구를 계속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65세에 정년퇴임 하시는 많은 교수님들을 보면 각 자 위치에서 연구의 정점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연구를 그만 두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국은 제가 아는 많은 대가들은 적어도 70대 중반까지는 활발하게 연구를 계속합니다.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퇴임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들 중에 일부는 중견 중소기업에서 연구를 이어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해외로도 나갑니다.
△현= 주요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들은 많은 경우 원천기반 기술이지만 아직은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서 산업 현장에서 바로 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이 산업현장에서 제품으로 개발되려면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특허 받은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서 기업이 더욱 향상시켜 최종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나라는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대학이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어요. 많은 경우 기업들이 아주 싼 값에 기술을 매입하려고 합니다. 대기업을 포함한 우리나라 기업들 대부분이 턴키베이스(다 완성된 기술을 가져와서 키만 돌리면 바로 제품생산이 되는 기술) 방식에 익숙하고 초기 기술을 가져와서 발전시켜서 큰 기술로 만드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억원 이상의 기술료를 받아도 세금 등 공제하고 나면 원발명자에게 기술료가 그렇게 많이 오지도 않습니다. 다음으로는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직접 벤처를 창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미국은 MIT, 스탠포드 등 유명 대학교의 교수들이 대부분 1개 이상의 자기 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창업을 장려하고요. 중요한 점은 대학교수가 직접 CEO를 맡아서 경영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거죠. 대부분 자문으로 일하고 제자나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깁니다. 우수한 벤처캐피털이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경영이나 펀딩은 우리가 할 테니까 계속해서 좋은 연구개발만 하세요”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교수가 벤처를 설립하면 반드시 CEO를 해야 펀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수는 대학원생과 연구원을 데리고 계속해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고 그 중에 상업성이 있는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벤처로 다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전한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현 교수님이 요점은 다 말씀하신 것 같아요. 저도 동감합니다. 선수와 감독이 같이 있어야 팀이 이뤄지는 건데 선수보고 감독까지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또 다른 문제가 많은 펀드들이 너무 엑시트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같이 회사를 키우려는 목적이 필요한데 3~5년가량 지나고 상장하면 바로 엑시트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현= 자본과의 좋은 융합이 필요하거든요. 저도 전에는 기술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물론 기술이 중요하긴 하죠. 기본이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돈이더라구요. 여기 돈이라는 게 자본만 포함하는 게 아니라 경영, 전략 그런 걸 다 포함하는 내용인데요. 예를 들어 모더나가 성공한 이유를 보면 로버트 랭어가 MIT 교수로 이 분야에서는 전 세계 최고입니다. 노벨상 빼고는 다 받았으니까요. 이 분하고 하버드 대학의 mRNA를 전공한 데릭 로시의 기술이 합쳐져서 mRNA 백신을 탄생시켰거든요. 근데 그것만으로 안되죠. 여기에 유명한 스테판 방셸이라는 벤처 캐피탈리스트의 존재가 있었기에 성공한 겁니다.
△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보다 기존 연구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연구가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를 보면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면 좋을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현=특허에 대한 접근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특허 출원 및 유지에는 많은 비용이 듭니다. 기업이 특허를 출원했다는 뜻은 그 비용을 감당할 의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원의 성격은 다릅니다. 정말로 돈이 될 만한 기술을 특허로 출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과제의 성과물로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특허는 수요자에 맞춰진 형태로 가공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연구개발(R&D)는 시장 중심이 아니라 연구 중심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습니다. 즉, 시장의 요구 괴리된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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