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말고 또 있다…전국에 도사린 '깡통주택' 시한폭탄
이상·위험 신호 곳곳서 감지…전문가 "정부차원 대책 필요"
(화성=연합뉴스) 강영훈 김솔 기자 =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오피스텔 전세금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동탄 외에 전국 곳곳에 매매가보다 전세금이 높은 이른바 '깡통주택'이 도사리고 있어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깡통주택 위험군이 20만 건을 넘고, 전세금 미반환액은 1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등 이상·위험 신호가 여럿 감지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역전세가 심화한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를 통한 깡통주택이 크게 늘었으며, 이들 주택의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이 도래하자 전세금 피해 사건이 하나둘 터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빌라왕'·'건축왕' 이어 동탄까지…끝없는 깡통주택 사태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동탄 오피스텔 전세금 피해 사건의 임대인인 A씨 부부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원 안팎의 동탄지역 오피스텔 253채를 차례로 매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보유세 등 자신들에게 부과된 세금을 내지 못할 처지에 몰리자 임차인들에게 "오피스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달라"는 연락을 하며 소유권을 넘기려 하고 있다.
임차인들은 역전세로 인해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맺은 데다가 계약 당시보다 집값이 하락한 상황에서 오피스텔을 떠안게 될 경우 큰 손해가 날 것이라며 경찰에 피해 신고를 하고 있다.
전세금 피해 사건은 동탄뿐만 아니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터지고 있다.
주택 1천139채를 보유하고 있다가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빌라왕' 사건, 피해자 3명이 사망한 125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인 '건축왕' 사건, 깡통주택 3천400여채로 전세 사기를 벌인 '빌라의 신' 사건 등 지난해부터 닮은꼴 사건이 연달아 불거지고 있다.
커지는 우려…깡통주택 위험군 23만건 넘어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전세금 피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주택자금 조달계획서(2020년~2022년 8월) 161만 건을 분석한 결과 주택 가격 대비 세입자 임대보증금 비중(전세가율)이 80%를 넘어 '갭투기', 즉 깡통주택 고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경우가 12만1천553건이고, 전세가율이 60∼80% 미만이어서 향후 집값이 하락할 경우의 잠재적 깡통주택 위험군도 11만1천481건이었다.
전국에 최소 23만가구의 깡통주택 위험군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임대 목적 주택 구매자의 주택 유형은 시기별로 변화를 보이는데, 2020년 상반기에는 서울, 2020년 하반기와 2021년 상반기에는 경기·인천, 2021년 하반기 이후에는 비수도권 지역의 매수가 각각 1순위를 차지했다.
수요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확산하는 흐름을 보인 것인데, 깡통주택 사태가 수도권에 한정되지 않으리라는 우려가 많다.
깡통주택으로 인한 전세금 피해 사건은 이미 '시한폭탄'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한 이상·위험신호는 여럿 감지되고 있다.
경찰청이 대통령실에 보고한 전세 사기 검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 사기는 총 622건으로 전년의 187건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연도별 보증 사고액 현황을 보면 지난해 전세금 미반환 금액은 총 1조1천726억원으로, 전년 5천799억원 대비 1.02배 증가했다.
"피해 사례 계속될 듯…정부 차원 대책 필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는 임차인들의 사연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동탄 전세금 피해 사건의 임차인 280여명이 참여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화성 병점에서도 집주인이 '돈이 없다'며 끝까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다가 겨우 받아냈던 사례가 있었다. 이슈가 되지 않아 개개인이 문제를 해결하러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국의 전세 사기 피해자 560여명이 모인 다른 채팅방에서는 "제주도 소재 빌라에 1억1천만원에 전세를 들어 거주 중인데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13세대 정도 피해를 볼 것 같다", "지난해 강남의 다세대 주택에 입주했는데, 임대해 준 법인에서 이중계약을 맺는가 하면 아직도 보증금 5천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등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던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공격적인 투자가 집값 하락을 만나면서 깡통주택 사태의 뇌관이 됐다고 분석한다.
부동산114 여경희 연구원은 "2020년에서 2021년까지는 전세금과 매매가의 간극이 좁아지면서 임대인들이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도 우후죽순으로 빌라를 매수하는 갭투자를 하기 유리했던 시기"라며 "최근 들어 집값이 크게 내려가면서 자금력이 한계에 부딪힌 임대인들이 늘어나자, 계약 만료가 됐으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규 동의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대학원장은 "2021년 아파트 가격이 정점을 찍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이 많이 공급됐다"며 "당시 2030 세대가 전세가율 등을 고려해 비교적 안전한 매물이라고 믿고 입주했지만, 집값이 내려가는 등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자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값 하락 추세와 금리 사정이 단기간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계약이 만료되지 않은 임차인들 가운데 피해를 보는 사례가 계속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며 "전국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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