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안전지대 없다]'설마 우리 집도…' 했다가 날벼락

이하은 2023. 4. 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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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 이어 경기·부산 줄신고…원희룡도 "올해 절정"
'갭투자' 성행후 계약 만료 임박…보증금 미반환 우려 증폭
2022년 10월 서울 강서구에서 빌라왕 김모씨가 사망하면서 조직적 전세 사기 방식이 알려졌다. 이후 인천과 경기, 부산에서도 전세 사기가 발견됐고, 추가 발생 우려도 크다. 지금까지 정부 대책 중에 피해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내용은 없었다. 막막함을 느끼던 피해자 3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6개월간의 전세 사기 궤적을 살피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본다. [편집자]

전세 사기가 전국을 위협하고 있다. 서울, 인천에 수천 건의 피해가 확인된 데 이어 최근 경기 동탄과 부산에도 전세 사기 신고가 접수됐다. 이들 지역에서 계약 기간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

피해는 앞으로 더 증가할 수 있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갭투자'의 탈을 쓴 전세 사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셋값 하락이 이어지면 보증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전세 사기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의 공동주택 모습/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전국에서 들리는 전세사기 신고

20일 경찰청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와 부산 부산진구 등에서 전세 사기 의심 신고가 다수 접수됐다.

동탄의 경우 임대차계약 만료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경찰에 신고하며 피해 사실이 알려졌다. 임대인 A씨는 최근 세입자들에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우니 오피스텔 소유권을 이전받으라고 통보했다.

A씨 부부는 이 일대 오피스텔 250가구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임차인들은 임대인이 계약을 위임한 공인중개사와 함께 조직적 전세 사기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 기사: 이번엔 '동탄 오피스텔왕' 터졌다…250채 소유 부부 파산(4월19일)

또 다른 전세 사기 의심 사례도 있다. 동탄에 오피스텔 43가구를 보유한 B씨가 지난 2월 말 파산신청을 했는데,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며 면책신청까지 함께한 것으로 나타났다. B씨 역시 전세 보증금 미반환으로 고소당한 상태다.

부산에서도 전세 사기 피해 신고가 잇따랐다. 경찰은 지난 14일 부산진구 서면, 동래구 등의 오피스텔 110가구를 보유한 C씨를 전세 사기 혐의로 송치했다. 최근에는 34가구가 입주한 범천동의 한 오피스텔에서도 보증금 미반환 신고가 이어졌다.

앞서 서울 강서구에서 1200가구의 달하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소유한 채 사망한 '빌라왕' 사건 이후 전세 사기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직접 공동주택을 지은 뒤 세입자를 들였던 '건축왕'이 활동한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현재 확인된 피해자만 2479가구에 이른다.

전세가격지수 변화 / 그래픽=비즈워치

'갭투자'의 민낯…여기서 끝 아냐

보증금 미반환 등 전세 사기 의심 사례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셋값은 2021년 하반기~2022년 상반기에 절정을 기록했는데, 이때 입주한 세입자들의 계약이 올 하반기에 만료될 전망이다. 세입자들은 보통 계약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피해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전세가격지수는 2022년 1월(103.25) 최고점을 찍은 뒤 올해 3월 92.44까지 추락했다.

비슷한 시기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하는 갭투자 비율도 증가했다. 전셋값 상승으로 매맷값과의 차이, 즉 갭이 줄어들면서 임대사업자가 아닌 투자자들도 몰렸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주택 매매 중 갭투자(임대보증금 승계) 비율은 34.3%에 달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갭투자 비율이 51.4%로 절반을 넘어섰다.

문제는 현재 매맷값과 전셋값이 동반하락하고 있는 점이다. 갭이 적었던 집은 전세 보증금이 매맷값을 웃도는 '깡통 전세'가 될 수 있다. 꼭 사기를 계획한 것이 아니더라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늘 수 있다는 의미다. 고의성이 없다는 점에서 전세 사기와는 다르지만,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앞서 국토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최고 수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셋값과 매맷값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전체 40%에 달할 수 있다는 연구다. ▷관련 기사: 커지는 보증금 미반환 위험…'계약갱신청구권'도 변수(2월15일)

정부 역시 올해 전세 사기 위험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월 전세사기 브리핑에서 "2017년부터 전세 사기 원인이 쌓였고 피해 계약 물량은 2019년부터 2022년 초까지 집중됐다"며 "(전세 사기는) 올해 절정을 이루고 2021년 체결된 전세 계약들이 내년까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추가 피해 방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세 제도가 지속하는 한 앞으로도 부동산시장이 침체될 때마다 전세 사기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빌라왕, 건축왕 등 조직적 전세 사기는 부동산시장 침체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사건"이라며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시점이 되면 언제든 전세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 사기 대책은 이미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에 대한 구제 방안과, 앞으로의 피해를 방지하는 중장기 과제 등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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