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직업 찾기] ‘약’하지 않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마약중독회복상담사
2021년 기준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사범은 약 450명. 하지만 이는 사법기관의 판결을 받은, 공식적인 통계상의 숫자일 뿐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의미하는 ‘암수 비율’을 따지면 이보다 28배 많을 수 있다고 한다.
최진묵 마약류 중독치료센터장은 어쩌면 숨어 있을지 모르는 마약류 중독자들을 만나 그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일을 한다. 마약중독회복상담사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 직업 이야기 그리고 청소년기의 중독에 대해서 들어봤다.
마약 중독자에서 회복상담사로
아무래도 ‘마약’은 보통 사람들이 자세히 알기 쉽지 않은 세계인데요. 이 직업에 몸을 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상담사가 된다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고, 꿈도 꾸지 못했어요. 저는 사실 마약을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2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마약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서운 사람은 아닙니다.(웃음)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동네 형으로부터 약간의 환각 효과가 있는 감기약을 접했는데요, 이후로 대마초, 필로폰, 코카인 등 여러 약물에 손을 대면서 교도소에 가게 됐어요. 그러다 마약 전과 9범이 되었고 8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약을 끊고 싶은 생각이 누구보다 간절해졌어요. 남들처럼 평범하게만 사는 게 꿈이었죠. 그래서 출소 후에 스스로 마약 중독 치료 전문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으면서 단약(약을 끊는 것)하고자 노력했어요. 그리고 저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고, 마약 중독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가 되었죠. 현재는 중독치료센터에서 마약 중독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 초빙교수로 강의나 교육을 하면서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담사와 비교해 마약중독회복상담사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아직도 마약 중독에서 탈출하고 있고,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회복 중에 있는 중독자’라고 말하거든요. ‘회복상담사’란 해당 문제를 경험하고 극복해서 상담사가 된 사람들을 말해요. 그래서 마약중독상담사라는 직업명에 꼭 ‘회복’이라는 말이 붙는 것입니다. 일반 상담사와는 달리 회복상담사는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와 유사한 경험을 통해 정서적인 유대 관계를 쌓고, 내담자의 극복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 강력한 상담 치료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실제로 제가 겪어봤기 때문에 마약 중독을 겪는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독자 생활을 했던, 그리고 약을 끊어내려고 오랜 시간을 견뎠던 그 경험을 나누면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요. 물론 그들의 문제가 재발하고, 가끔은 도망치고 포기하는 경우가 번번이 생겨요. 그래도 저는 기다려줄 수 있죠. 왜냐면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제가 서 있던 그 길을 지금 걷고 있는 사람들이 부디 멈췄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마약 중독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게 되나요? 중독자들은 대체로 어떤 치료를 받게 되는지 궁금해요.
보건복지부에서 마약류 중독자를 위한 병원 치료 프로그램으로 ‘치료 보호 제도’라는 걸 운영해요. 전국에 21개의 전문 병원이 있는데요, 이 제도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약 중독은 병원 치료만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 없어요. 병원에서는 사실상 몸 안의 약을 빼내는 ‘디톡스’ 위주로 약물 치료가 이루어지는데요. 자꾸만 약을 하게 되는 이유는 결국 심리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어요. 따라서 심리 상담을 받거나 재활센터 같은 곳에서 마음의 병을 함께 치료해야 합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는 마약류 사용 청소년을 위해 전문상담사가 직접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제가 있는 인천 다르크센터에는 약물 중독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고 있어요. 이곳은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며 서로가 서로의 치료와 회복을 돕는 ‘치유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약류 중독자들을 전담으로 치료하는 기관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마약중독회복상담사의 경우도 우리나라에 많지 않아요. 제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요.
열악한 환경에서도 7년이 넘도록 마약 중독과 관련한 상담과 교육에 힘쓰고 계셨네요. 그동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을까요?
예전에 마약 중독 치료 전문병원에서 일했을 때, 거기서 만난 친구가 있어요. 치료를 열심히 받다가도 마약 투약이 재발하게 되면 꼭 저에게 연락이 와요. 경찰서에서 약에 잔뜩 취한 상태로 “살려주세요. 선생님”이라는 전화를 몇 차례 받은 적도 있죠. 그 이후로 1년 정도 정신병동에 있다가 제 권유로 저와 함께 치료센터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단약을 한 지 곧 100일이 돼요. 이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유튜브 채널을 저랑 같이 운영 중이죠. ‘마쓰형’ 채널에서 이 친구의 ‘단약 브이로그’를 볼 수 있어요. 1일 차부터 현재까지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를 응원해주세요.
한 번도 많고, 천 번도 적은 ‘중독’
사실 마약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중독에 빠질 만한 요소가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점점 ‘중독 사회’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의미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요? 또, 청소년기의 중독은 왜 위험한지도 알고 싶습니다.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어떤 행위에 몰입하는 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가령 게임을 즐기는 사람과 게임 중독자는 확실히 다르죠. ‘딱 몇 시까지만 하고 그만둘 거야’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마약, 술, 담배, 게임, 도박, 스마트폰 등 어떤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되면 삶의 범위가 좁아져요. 매일 생각하고 보는 게 그것밖에 없어요. 또, 청소년기에는 전두엽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서 중독에 빠지게 되면 심각한 뇌 손상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약물을 오랫동안 투약했던 아이들은 IQ 지수가 70~80으로 낮아지기도 해요. 사고가 느려지고, 대화도 잘되지 않고, 사람의 감정도 못 읽어 혼자가 되는 거죠. 모든 중독은 혼자가 되는 거예요. 가족과 친구가 떠나가고 세상에 나와 중독성 물질, 이렇게 둘만 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떤 것에 중독되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중독 증세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대체로 중독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은 호기심, 또는 주변 사람의 권유 때문입니다. 저는 ‘약물 경험은 한 번도 많은 것이고, 천 번도 적은 것이다’라는 말을 종종 해요. 이는 곧 한 번만 해도 중독이 되고, 천 번을 해도 부족함을 느낀다는 거예요. 이렇게 중독이 무서운 만큼 호기심으로라도 단 한 번의 경험도 하면 안 된다고 청소년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내가 만약 어떤 것에 중독이 되어 빠져나오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주변에 알리는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가족, 친구, 선생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거예요.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계속 연습해야 해요.
앞으로는 센터장님처럼 중독 분야 상담사를 꿈꾸는 청소년이 많이 생겨날 듯해요. 이 직업을 준비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다면요?
중독상담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질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사 영역 안에 중독상담사가 포함되어 있어요.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면 중독 관련 기관 및 재활시설에서 일할 수 있어요.
중독 치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싶다면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에서 관련 커리큘럼을 수강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요, 한국중독전문가협회에서 교육을 받아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상담사로서 내담자를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자’라는 마음가짐이에요. 중독은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일 뿐이지, 사람 자체가 아니에요. 행위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내담자의 눈으로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매일 배우고 자라는 기분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일을 꼭 찾길 바라요.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바림 · 자료 제공 최진묵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집주인 돈 많아요”…전세사기 중심에 공인중개사 ‘배신’ 있다
- ‘우크라 무기지원 가능성’ 보도에 대통령실 “러 행동에 달려”
- ‘전세사기’ 27살 취준생 “부모님 만난 지 좀 됐어요…”
- 4월 45도 ‘죽음의 폭염’ 아시아…심장마비 13명 숨지기도
- 모르는 번호 ‘모바일 청첩장’ 열었다가…‘축의금 7천만원’
- 박원순 부인 “제 남편은 성희롱 가해자 아닌 억울한 피해자”
- [단독] “고위직 출퇴근 기록 의무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발의
- 운동 20년 했지만 ‘퇴짜’…265만명을 위한 헬스장은 없다
- ‘아스트로 문빈’ 사망에 멤버 차은우 귀국…연예계 추모 물결
- 11살의 ‘로빈15’… 교통사고 뇌사 판정 뒤 3명 살리고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