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박하다, 피 빠는 드라큘라로 노동착취를 풍자하다니('렌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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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빤다'는 말은 종종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표현으로 쓰이곤 한다.
크리스 맥케이 감독의 <렌필드> 는 아마도 스스로 사업주가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자신의 열정을 팔아 살아가게 되는 노동자들에게서 드라큘라에게 피를 빨리는 피해자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렌필드>
하지만 드라큘라와 렌필드가 나누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점을 담아낸 풍자적인 대사들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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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피를 빤다'는 말은 종종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표현으로 쓰이곤 한다. '노동자의 고혈을 빠는 사용자'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 크리스 맥케이 감독의 <렌필드>는 아마도 스스로 사업주가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자신의 열정을 팔아 살아가게 되는 노동자들에게서 드라큘라에게 피를 빨리는 피해자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드라큘라에게 속아 종신계약된 채 그를 위해 제물을 바치는 일을 해온 렌필드(니콜라스 홀트)라는 인물의 각성을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는 렌필드가 관계의 문제들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어느 교회모임에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마다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과 상처들을 털어놓는 그 자리에서 렌필드는 "지독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내 보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 보스는 다름 아닌 드라큘라 백작이다. 렌필드는 보스의 명령대로 순결한 제물들을 잡아 바친다. 물론 능력도 부여받는다. 벌레를 먹으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고, 드라큘라의 피로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종신계약이고, 렌필드가 원하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그렇게 회의를 느끼며 교회 모임에 나오는 와중에 렌필드는 총 앞에서도 정의를 향해 용기를 잃지 않는 경찰 레베카(아콰피나)를 만나면서 조금씩 각성하기 시작한다. 드라큘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것. 물론 그게 쉬울 리는 없다.
드라큘라가 피를 빠는 뱀파이어물이지만, 목이 잘리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공포는 어딘가 B급 코믹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액션의 스펙터클이 벌어지지만 그 장면들은 하드고어한 끔찍함과 더불어 빵빵 터지는 웃음을 동반한다. 렌필드가 어쩌다 휘말리게 된 마약 조직과 그들과 결탁해 함께 공격해오는 경찰들과 벌이는 일전은 그래서 웃음이 터지는 B급 액션을 보여준다.
하지만 드라큘라와 렌필드가 나누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점을 담아낸 풍자적인 대사들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드라큘라 역할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찰떡같은 연기로 영화 전체에 공포 분위기와 더불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얹어준다. 우리에게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로 익숙한 아콰피나의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빵빵 터지는 대목은 렌필드가 드라큘라와 자신의 파워에 대해 각성하는 대목이다. 알고 보면 자신이 드라큘라에게 제물을 바치는 식으로 자신의 파워를 헌신적으로 주었기 때문에 드라큘라는 '슈퍼파워'를 갖게 됐고 자신은 점점 힘이 없어졌다는 걸 렌필드는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더 이상 파워를 주지 않으면 드라큘라가 슈퍼파워를 갖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건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노사 관계에서 노동자의 관점으로 이 관계를 재정립하는 이야기이다. 우리 자신의 삶에 부여해야할 노력과 그로인해 자신 또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저들에게 부역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저들이 더 강력한 부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현실을 꼬집고 있는 것. 영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이 황당한 상황들 속에서 피식피식 피어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건, 이러한 세상에 대한 풍자가 통쾌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게다. 자본화된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드라큘라들에게 가하는 일격이 주는 통쾌함.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렌필드>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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