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불 손해배상 소송’ 이재민 일부 승소···법원 “한전은 87억 배상하라”

최승현 기자 2023. 4. 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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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 산불의 피해를 보상하라며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재민들이 20일 오후 춘천지법 속초지원 앞에서 한전의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4월 강원 고성 산불의 피해 주민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긴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산불과 관련해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승소한 두번째 사례로 알려졌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재판장 김현곤 지원장)는 20일 이재민 등 산불 피해자 60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주택과 임야 등 분야별 전문감정평가사 감정 결과를 토대로 산출된 감정액 중 60%인 87억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한전이 이재민들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 “원고들이 산불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는 만큼 원고에게 각각 700만원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 신청도 일부 인용했다.

이는 2019년 말 한전의 최종 피해 보상 지급금을 한국손해사정사회가 산출한 손해사정 금액의 60%로 하도록 한 고성지역특별심의위원회 의결과 같은 비율이다.

재판부는 “이번 산불 사건 관련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며 “피고가 고의 중과실로 화재를 발생시킨 게 아니고 당시 강풍 등 자연적인 요인 때문에 피해가 확산한 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마음이 무겁다. 다시 한번 산불 피해를 보신 분들께 안타까운 마음은 전한다”며 “오늘 선고된 판결에 대해서는 송달받은 후 2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산불 피해 주민들은 “왜 우리가 40%를 책임져야 하는지 설명해달라. 어떻게 복구를 하라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김경혁 4·4산불비상대책위원장은 “감정평가 과정에서 피해 입증이 어려운 부분으로 인해 이미 엄청난 손해를 봤는데 또다시 40%를 이재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오는 23일 이재민 총회를 열어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2020년 1월 산불 피해자 21명이 한전을 상대로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추가 소송이 잇따르면서 원고 수와 청구 금액 규모가 늘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은 “한전의 최종 피해 보상 지급금을 손해사정 금액의 60%(임야·분묘 40%)로 하도록 한 고성지역특별심의위원회 의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26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결렬됐고 변론이 재개된 끝에 이날 1심 판결이 내려졌다.

고성 산불은 2019년 4월 4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설치된 전신주 전선 일부가 강풍에 끊어지면서 생긴 불티가 마른 낙엽 등에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당시 산불로 축구장 면적의 1700배가 넘는 산림 1260㏊가 잿더미가 됐고, 879동의 건축물이 소실되면서 11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04년 3월 속초시 청대산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수사기관이 ‘고압선에서 발생한 불꽃’을 발화원인으로 지목하자 한전 측은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후 이재민 일부가 한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이재민들이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향후 전기적 요인에 의한 발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산불이 발생할 경우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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