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미울 때도 있었지만…” 무너져가는 친정, 김정은은 외면할 수 없었다 [MK인터뷰]

민준구 MK스포츠(kingmjg@maekyung.com) 2023. 4. 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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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미울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 못 할 감정이 생기니까….”

부천 하나원큐는 20일 오전 2차 FA 계약 대상자였던 김정은과 계약 기간 2년, 총액 2억 5000만원에 계약했다고 전했다. 친정을 잠시 떠났던 ‘부천의 여왕’이 다시 컴백한 것이다.

김정은은 2006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전체 1순위로 신세계에 지명됐다. 이미 학생 선수 시절,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여자농구를 이끌 재목이라는 평가 속에서 화려하게 프로로 진출했고 기대에 적극 부응했다.

부천 하나원큐는 20일 오전 2차 FA 계약 대상자였던 김정은과 계약 기간 2년, 총액 2억 5000만원에 계약했다고 전했다. 친정을 잠시 떠났던 ‘부천의 여왕’이 다시 컴백한 것이다. 사진=WKBL 제공
신세계, 그리고 하나외환-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의 고독한 에이스로서 팀을 이끈 김정은. 그러나 2016-17시즌 종료 후 FA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결국 정든 팀을 떠나야 했다.

김정은은 아산 우리은행으로 이적, WKBL 정상에 섰다. 이미 5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한 우리은행에 김정은이란 슈퍼 에이스까지 합류했으니 적수가 없었다. 그리고 2022-23시즌 통합우승 이후 김정은은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김정은과의 일문일답이다.

Q. FA가 된 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떤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우리은행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이곳에서 은퇴할 생각이었기에 사실 FA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시즌을 치르면서 은퇴도 생각했었다. 그러다 시즌이 끝났고 FA가 되면서 여러 오퍼가 왔을 때는 참 어려웠다. 우리은행을 돌아보면 지금 내가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만 다른 팀에 갔을 때 얻는 리스크, 그리고 부담이 적지 않았다. 괜히 이적했다가 말년이 비참해지는 건 아닐까, 안정적으로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됐다.

Q. 여러 팀의 오퍼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선택은 하나원큐, 친정이었다.

우리은행은 물론 하나원큐, 그리고 신한은행 등 모두 과분한 조건으로 오퍼해주셨다.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친정이라는 메리트가 가장 컸다. 6년 전에 떠났을 때도 팀이 싫어서 나온 건 아니다. 나는 하나원큐의 창단 멤버였고 청춘을 함께한 곳이었다. 물론 팀을 떠나 우리은행으로 갔을 때는 죽도록 미워하기도 했다(웃음). 근데 좋은 선수가 나가고 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 못 할 감정이 생기더라. 마음이 아팠다. 저 팀이 저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친정이었기에 나를 움직이게 했다.

Q. 최근 부상이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은퇴를 생각했다는 건 조금 놀라운데.

사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2년 전 발목 수술을 하고 나서 많이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속상했다. 그러면서 언제 은퇴하는 게 적기일까 고민했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 후 지금 은퇴하는 것도 멋질 것 같았다. 우리은행은 내가 없어도 여전히 강할 팀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양)희종이 오빠의 인터뷰가 나를 많이 움직이게 했다. 우리은행도 결국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젊은 선수들이 뛰어야 하는 팀이다. 내가 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데 굳이 남아서 젊은 선수들의 기회를 뺏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 희종이 오빠가 ‘내가 20분 뛰는 것보다 젊은 선수가 20분 뛸 때 더 가치 있다’는 말을 했다. 그걸 보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Q. 가족, 그리고 남편은 어떤 조언을 해줬나.

우리 가족들, 특히 동생은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뤘으니 우리은행에서 편안하게 은퇴하는 것도 멋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동생과 정말 각별한 사이인데 중학교 때부터 내가 농구하는 걸 계속 지켜봤다. 그래서인지 지금 상황에서 편히 은퇴하는 걸 바랐을 수도 있다. 남편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 존중해줄 것이라고 했다. 주변 지인들은 아직 은퇴는 아닌 것 같다고 말렸다.

Q. 하나원큐는 분명 변화와 발전이 필요한 팀이다.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을 것 같다.

냉정하게 봤을 때 내가 하나원큐에 간다고 해서 전처럼 3, 40분을 계속 뛸 수는 없다. 얼마나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자농구에 18년 동안 있으면서 리빌딩 과정에서 베테랑, 고참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현역 선수로 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젊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2년을 보내는 것도 분명 가치 있고 명예로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도완)감독님이 추구하는 방향 역시 적극 공감했다. 내게 성적을 요구했다면 자신감도 없고 부담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원큐의 초석을 다지고 싶다고 했다. 만약 본인이 나가더라도 팀을 잘 만들어놨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힘을 쓰겠다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와 방향성이 같다고 느꼈다. 하나원큐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진심이 통했다.

한때는 죽도록 미웠던 친정, 그러나 김정은은 무너져가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진=WKBL 제공
Q. 하나원큐도 6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일단 숙소가 서울이 아닌 청라다. 많이 낯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오늘 상견례를 하고 왔다. 너무 좋아졌더라. 신지(신지현 애칭)에게 “농구만 잘하면 되겠다”고 말했다. 전과 달리 프런트 직원분들도 바뀌었다. 단장님, 국장님 모두 하나원큐를 다시 명문구단으로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하신다. 일단 시설이 너무 좋다. 한 가지 걱정인 건 다들 어리더라…. 30대가 한 명도 없다. 언니가 아니라 이모라고 불려야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린 친구들과 어떻게 가까워져야 하나 고민했다(웃음).

Q. 하나원큐 관계자가 말하기를 김정은 선수의 이적 소식이 전해진 후 신지현 선수가 가장 기뻐했다고 했다.

신지는 어릴 때부터, 입단했을 때부터 봤던 친구다. 그때는 같이 재활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더 가까워졌다. 이번에 보니 많이 의젓해졌다. 대화를 나눠 보니 팀에 대한 걱정이 큰 듯했다. 근데 굉장히 엉뚱하기도 하다. 우승 이후 시간이 꽤 흘렀는데 갑자기 축하한다며 연락이 왔다. 한참 지나고 나서 연락하냐고 했더니 “언니, 거기서 우승했으니 다시 돌아오세요”라고 했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러다가 한 번 더 같은 내용으로 연락이 왔다. 근데 내가 왔으면 좋겠지만 부담이 크고 또 팀 성적도 안 좋다 보니 걱정도 된다고 하더라.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웃음). 이적하고 나서 얼굴을 보니 이제는 자기가 정말 잘해주겠다고 한다. 이제는 신지에게 의지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Q. 단순한 친정 복귀가 아니다. 하나원큐에선 은퇴 후 지도자 과정에 대한 계획 역시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열심히, 성실히 선수 생활을 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선수에게 다음 커리어까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Q. 현재 하나원큐 선수단은 오프 시즌 훈련이 시작됐다. 합류 시기는 결정됐나.

마음 같아선 빨리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할 일이 너무 많다. FA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2주 뒤 합류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눠야 한다.

▲ 김정은이 우리은행에 보내는 메시지

김정은은 전화 인터뷰 마지막에 꼭 써줬으면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적 후 설레는 감정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결정이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은행 식구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동생들이 정말 잘 따라줬고 (위성우)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신뢰 덕분에 좋은 커리어를 얻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며 “사실 우리은행 후배들에게 먼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 앞서 기사가 나가는 바람에…. 먼저 연락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받는 입장이 됐다.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선택에 대해 존중해주고 또 멋있다, 응원하겠다고 해준 우리 후배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민준구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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