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톡] 그래서, 오염수 방류에 동의할 건가
모호한 입장만 반복해 내놓는 정부
독일처럼 당당하게 할 말하라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과학적·객관적 안전성 검증 없이 방류되는 것에 대해 반대함을 알려드립니다.’
지난주 한 매체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윤석열 정부는 똑 부러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자 국무조정실과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이런 제목의 보도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뜬금없다. 일본은 오염수를 과학적 검증 없이 방류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동원해 과학적 검증을 거치는 안전한 방류임을 홍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검증 없는 방류에 반대한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 아닌가. 되레 과학적으로 검증만 되면 방류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속뜻이 담겼다거나, 방류를 용인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 한다는 오해를 살 법하다.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검증, 그 과정에 한국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분명히 했음을 알려드린다.’
지난달 일본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 당시 일본 의원들에게 오염수 방류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자 대통령실은 국내 언론에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역시 뜬금없다. 일본은 그들의 방류 방식이 과학적이라 문제없다 강조해 왔고, 그 방식이 국제기준에 맞는지 보는 IAEA의 검증은 벌써 막바지에 와 있다. IAEA 검증에 한국인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진 지 오래다. 국조실과 대통령실 설명은 핵심을 비켜갔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일본의 방류에 동의할 거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출근길에 오염수 방류는 “주변 관련국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오염수 처리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안전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해야 하며,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지속 강조해나갈 것이다.’
주요 7개국(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들이 16일 일본 삿포로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 일본이 IAEA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투명한 노력을 환영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한 후 국조실과 5개 부처가 낸 입장이다. 이런 입장이 아닌 나라가 있기나 할까. G7 방문을 기회 삼아 괘씸하게도 ‘오염수 방류 환영 성명’까지 추진한 일본을 향해 최인접국이 내놓은 입장치고 한가하지 않은가. 한참 먼 독일에서 온 환경장관은 일본 면전에 대고 “방류를 환영할 수 없다”고 했는데 말이다.
과학적 검증의 결과가 방류를 저지할 수 있을 걸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오염수 속 방사성 물질이 정말 기준치 이하로 걸러지는지는 직접 거르거나 거르는 현장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일본이 제공하는 자료로 검증할 수밖에 없다. 방류된 방사성 물질이 미칠 영향은 광범위하게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고, 설사 영향이 나타나도 미미한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IAEA가 4차례 낸 보고서는 최종 결론이 방류에 긍정적일 거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과학적 검증이 방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가 돼가는 형국이다.
검증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막아주길 바라는 게 민심이다. 막기 어렵다면 늦추기라도, 그마저 어렵다면 반대나 우려의 목소리라도 ‘당당하게’ 내달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란 원론적 수사를 아무리 반복한들 공허하다. 일본은 방류의 불가피성에 대해 우리 국민에게 사과하지도,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어떤 과학적 검증도 국민의 자존심을 넘을 수 없다.
임소형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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