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사태’로 고민 깊은 정부…‘개인정보 국외이전’ 통상 압력 어쩌나
“‘데이터 통상’ 압력 거센데 판단기준 없어”
미국·영국 등이 국민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며 정부 차원에서 ‘틱톡’ 등 중국 온라인 서비스 이용을 금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도 국민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틱톡 사태와 관련해서는 자국민 개인정보 보호를 앞세우면서 다른 나라 국민 개인정보를 자국으로 빨아들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주도적으로 길을 트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법에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는 개인정보 국외 이전이 국제협정에 의해서는 무방비로 가능해지는 구조여서 ‘디지털 통상 압력’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개인정보와 디지털 통상’을 주제로 ‘개인정보 미래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고학수 개인정보위원장은 “최근 가장 고민이 많은 영역이 국민 개인정보의 국경간 이전”이라며 “유럽연합을 만나면 미국과 친하냐, 미국을 만나면 유럽연합과 논의 중이냐고 물어, 마치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처럼 난처하다”고 밝혔다. 협정을 둘러싼 압력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지난달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을 보면, 별도 동의 없이 국내에서 개인정보를 국외로 이전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 국제협정·조약 등을 맺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이렇게 ‘개별 국가의 법적 절차와 상관 없이 개인정보를 국외로 이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미국·유럽연합 등이 국가간 협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영진 김앤장 변호사는 포럼 발제를 통해 “이제 미국도 자유무역협정(FTA) 같이 거대한 협정이 아니라 자신들이 꼭 필요한 몇 개 요소만 찍어서 틀 만들기(프레임워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상무부 주도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개발한 ‘국경간 프라이버시 규칙(CBPR)’을 독립시켜 미국·한국·일본·싱가포르 등 9개 회원국 기업을 대상으로 인증을 주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애플·시스코·아이비엠(IBM) 등 60여개 빅테크 기업이 이 인증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네이버·엔씨소프트 등이 이를 취득했다. 인증 기업 사이에는 정보보안 수준이 높다고 인정돼, 현지 법률 준수 여부 확인 절차 없이 개인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개인정보의 이전에 대한 적정성 결정’은 영국·일본 등이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2021년 말 유럽연합으로부터 적정성 결정을 받았다. 적정성 결정을 받은 국가는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 개인정보를 국내로 들여올 때, 개별 기업 차원의 승인 절차가 면제된다. 유럽연합은 같은 방식으로 회원국 기업들이 한국 국민 개인정보를 이전받을 수 있는 수준의 협정을 바라고 있다. 최근에도 유럽연합 집행위 사법총국 장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이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에서 이상엽 교수(고려대)는 “틱톡 사례처럼 국가안보 차원에서 플랫폼을 규제하거나, 반대로 데이터 이동의 자유화를 주장하는 상황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부터 데이터 주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다른 쪽으로는 데이터 경쟁력을 개발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보주체 소외’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개인정보 국외이전 문제를 통상 정책의 맥락에서만 보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입장만 관철하게 돼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강정화 개인정보보호위원(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국민들은 자신의 정보가 국외로 이전된다고 인식하기도 힘들고, 문제점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고장원 산업통상자원부 디지털경제통상과장은 “여러 의견을 듣고 개인정보위와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학수 위원장은 “법 개정으로 개인정보의 국경간 이동에 대한 변화 가능성이 커졌고, 전세계적으로도 전환기인 동시에 혼란기”라며 “선례 자체가 거의 없는 영역인데다, 우리 입장을 어떻게 가져갈 지 기준으로 삼을 만한 연구도 거의 없어 학계의 관련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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