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뜨면 건설사가 甲"…공사비 인상에 얇아지는 조합원 지갑

최지혜 2023. 4. 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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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계약변경 이유로 공사비 인상"

올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가운데 상장사가 국내 사업장에서 공사비를 인상한 변경계약은 총 9건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 DB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건설사들이 기존 수주한 도시정비사업의 공사비를 올리고 있다. 통상 건설원가를 포함한 물가 상승을 반영하거나 사업의 조건이 바뀌는 경우 공사비가 변경된다. 그러나 증액 조항 없이 공사비를 인상하는 것은 시공사의 입장을 이용한 갑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가운데 상장사가 국내 사업장에서 공사비를 인상한 변경계약은 총 9건이다. 이 가운데 4건은 정비사업과 주택 신축사업 등 시행사나 조합이 발주한 사업이다.

GS건설은 전날 앞서 2019년 7월 수주한 서울 영등포구 '양평 제12구역 정비사업' 계약금을 2382억 원에서 2463억 원으로, 지난달에는 대전 서구 '탄방동1(숭어리샘)구역 정비사업' 계약금을 2454억 원에서 2574억 원으로 인상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범어우방1차아파트 재건축' 현장의 계약금을 1081억 원에서 1385억 원으로 올렸다.

신축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현대건설은 '파주운정 P1, 2BL 복합시설 신축공사' 계약금 규모를 1조1900억 원에서 1조2584억 원으로, 대우건설은 '시화 MTV 거북섬 주상1BL 주상복합 신축사업' 도급액을 2949억 원에서 3253억 원으로 인상했다.

건설사가 발주처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이유는 설계·마감재·연면적 등 공사 조건 변경이 주를 이룬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물가와 금리 상승이나 발주처의 조건 변경 등 다양한 원인으로 공사비가 조정된다"고 말했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공사비가 인상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공사비 검증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건설사가 조합에 요구한 공사비 인상액은 총 2조1188억 원 규모다.

그러나 부동산원이 이들 사업지를 검토해 산정한 적정 공사비 인상액은 1조6888억 원으로 건설사가 요구한 금액보다 20%(4200억 원)가량 낮았다. 홍 의원은 "공사비 검증을 받아도 건설사와 조합원 간 협의는 순탄치 않다"며 "공사비 검증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공사가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며 정비사업 조합과 갈등을 빚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배정한 기자

물가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해 시공사와 조합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GS건설·현대건설 컨소시엄인 시공단은 지난 2월 서울 마포구 '공덕1구역'의 3.3㎡(평)당 공사비를 613만 원으로 올렸다. 시공단는 5년 전 448만 원 수준이던 평당 공사비를 200만 원 이상 올렸다. 조합은 550만 원 수준의 공사비를 원했으나 결국 시공사의 요구만큼 증액을 결정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계약서에 에스컬레이션 조항도 없는 정비사업이나 주택건설 사업의 공사비를 물가 상승을 이유로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컬레이션 조항은 물가나 금리의 변동에 따라 공사비를 올릴 수 있도록 계약에 포함하는 것이다. 착공 후에도 공사비를 올릴 수 있어 건설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사업 조건에 해당하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대규모 프로젝트나 관급공사 등에서만 사용된다.

사업이 지연되면 오히려 조합이 금융비용 등으로 피해를 볼 수 있어 결국 시공사의 요구대로 공사비를 올려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의 한 주택정비사업 조합원은 "시공사 선정 이후부터는 건설사가 갑"이라며 "착공 전이라도 건설사가 사업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어 올려달라는 만큼 공사비를 올려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통상 계약서는 착공 전까지 물가 상승에 따라 공사비가 증액될 수 있도록 하고, 이후에는 고정시키는 형태"라며 "조합이 착공 이후 공사비 증액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는 없지만 최근에는 건설사가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며 버티면 조합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협의를 하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isd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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