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누비던 ‘의사과학자’가 장애인 육상팀 만든 이유 “스포츠로 삶의 즐거움 찾아주고 싶어”
극지의학 연구하던 의사과학자, 사회적 기업 창업한 이유
“장애인들, 스포츠로 도전 정신 깨웠으면”
“장애인 스포츠 스타 육성해 관심 키우는 것도 목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은 265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한다. 단순히 산술적인 계산으로 주변인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이다. 하지만 실제 주변에서 장애인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집 밖에 편하게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경제활동에 대한 지원은 이뤄지고 있지만, 장애인의 체육 활동에 대한 지원과 연구는 여전히 미진하다. 장애인 재활체육 프로그램 대부분은 연구 기간이 끝나면 함께 사라진다.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을 위해 두 팔 벗고 나선 사람이 있다. 극지의학 전문가인 고려대 의대의 이민구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1995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생리학으로 박사를 받은 의사과학자인 동시에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사업가다. 그는 2019년 ‘좋은운동장’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장애인을 대상으로 재활체육, 장애인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신경과학과 스포츠의학을 연구하던 의사과학자가 장애인을 위한 연구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봉사활동으로 시작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다. 막상 연구를 시작한 이후에는 장애인 재활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려면 장애인 스포츠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교수는 “장애인들은 스스로를 환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람”이라며 “장애인 스포츠는 단순히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 스스로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의대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장애인 재활체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9년 학교에서 사회봉사단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비롯해 해외에 나간 봉사단의 건강을 챙기거나, 국내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봉사를 하면서 장애인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재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는데, 예상보다 장애인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직접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체육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연구들을 하고 있나.
“주로 척수장애인의 재활운동 기능을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재활체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의 움직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어떤 종류의 장애가 있는지, 어떤 동작이 어려운지를 분석하는 알고리즘과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가령 편측마비를 가진 장애인은 일반적인 동작을 할 때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분석하는 것이다. 모여진 데이터를 활용해 AI로 운동 프로그램을 짜주는 트레이너 기능도 개발할 예정이다.”
-연구와 사업은 전혀 다른 일이다. 사업으로 발전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를 하면서 장애인 본인들이나 보호자를 자주 만났다. 체육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지만, 결국 연구가 끝나면 프로그램도 함께 끝나 아쉽다는 이야기다. 내가 했던 연구들이 단순히 연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해지려면 사업을 통해 관련 시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재활 체육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장애인들은 보통 운동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한테 1시간 동안 운동을 하라고 하면 심박수가 최대 180까지 올라갈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운동 동작 자체를 모르니 심박수가 오르지 않는다.”
-재활체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재활체육은 기본적으로 재활운동과 다르다. 재활운동이 신체 기능을 회복시키는 목적이라면 재활체육은 장애인들이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쌓고, 기본적인 동작을 연습하는 것이다. 가령 휠체어레이싱을 하려면 휠체어를 미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휠체어를 밀 때 바퀴를 앞으로 미는 동작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 척추마비, 그 중에서도 경추 6번 이상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미는 동작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바퀴를 당겨야 한다. 이때 필요한 체력과 운동능력을 기르는 것이 재활체육이다.”
-의사과학자로서 장애인 재활체육 연구를 한다는 점이 큰 장점일 것 같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장애인과 관련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쌓여 있지 않다. 의사들이 가진 지식만으로 이들의 동작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가령 어린 시절 뇌성마비를 앓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보행방식을 개발했을 거다. 신경과학적으로 이 사람의 보행을 보면 전혀 해석할 수 없다. 장애인의 움직임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 분석하는 것이 재활체육 연구의 핵심이다.”
-장애인 재활체육 연구 이전에는 극지의학을 연구하던 의사과학자였다.
“예전부터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를 할 정도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남극에나 한 번 다녀와라’는 추천을 받고 극지의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기회가 마련돼서 2010년 남극에 있는 세종기지에 파견을 다녀오기도 했다. 극지의 생명현상에 관한 연구를 하러 파견을 갔는데, 현장에서 보니 파견 대원들을 위한 의료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연구를 통해 극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좋은운동장’을 창업했다.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장애인 재활체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장애인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6개월에서 1년까지 일정 기간 동안 재활체육 프로그램으로,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기본적인 사업 내용이다. 그 이후에 장애인 스포츠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을 훈련시키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지원까지 이어진다. 최근에는 국내 대기업에서 영업망을 지원해줘서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
-최근에는 장애인 육상 선수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장애인 스포츠를 사업화 하려면 시장이 필요하다. 스포츠 시장은 스타 플레이어와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로 만들어진다. 장애인 육상 선수단을 통해 장애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스타 플레이어를 키운다는 목표로 창단했다.”
-육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장애인 스포츠 종목은 장애 등급을 3~4개로 나눈다. 같은 등급이라도 중증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육상은 60개 가까운 장애 등급을 구분한다. 그만큼 공정한 스포츠라는 의미다. 또 육상은 스포츠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학적인 훈련이 중요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재활을 위한 사업인 만큼 보람도 클 것 같다.
“장애는 의학적으로 질병이 아니다. 단지 신체 기능이 조금 다르거나 부족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 활동과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장애인들 스스로가 운동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꾸준히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고, 삶의 즐거움을 찾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장애인들 스스로 도전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라는 것인가.
“장애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당장 몸이 불편하다고 병원에 10년 다니면 환자지만, 운동을 10년 하면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 개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장애인들 스스로도 더 자신감을 갖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스포츠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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