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토킹’ 당한 북 이탈여성, 이사 어려워 보복 공포 견뎠다

이주빈 2023. 4. 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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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탈 여성인 ㄱ는 3년 동안 스토킹을 당했다.

성폭력 피해를 본 북한 이탈 여성에게 법률상담을 지원하는 전수미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는 "하나원 퇴소 뒤 북한 이탈 주민이 살게 되는 임대주택은 저렴하기 때문에 (임대기간 2년이 지나더라도) 다른 주거지로 이사하기 쉽지 않다"며 "북한 이탈 여성은 집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트라우마를 안은 채 피해 장소에서 계속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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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 빈틈을 비추다]여가부 ‘폭력피해 북한 이탈여성’ 관련 보고서
게티이미지 뱅크

북한 이탈 여성인 ㄱ는 3년 동안 스토킹을 당했다. 가해자는 새벽마다 ㄱ씨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ㄱ씨는 낮에 택배 기사가 누른 벨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했다. 하지만 보복 당할까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진 못했다. 북한 이탈 주민은 거주지를 옮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하고 이사하면 좋죠. 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면 찾아오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정부가 지원한) 임대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벌금 조금 내고 풀려날 텐데, (그러면) 더 악하게 (보복)할 수도 있으니까요.” (북한 이탈 여성 ㄱ씨)

북한 이탈 여성은 스토킹 등 젠더 폭력 피해를 당하더라도 거주 이전이 쉽지 않은 탓에 ㄱ씨처럼 신고를 꺼린다는 정부 보고서가 나왔다. 〈한겨레〉가 20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여성가족부의 용역보고서 ‘폭력피해 북한 이탈여성 지원사업 내실화 방안 연구’에는 한국에 정착한 뒤 폭력 피해를 본 북한 이탈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보고서는 20~50대 북한 이탈 여성 10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고, 추가로 20~60대 북한 이탈여성 25명과 이들을 지원하는 관계자 13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했다.

북한 이탈 여성 중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22.9%(25명)였다. 피해를 경험한 여성 가운데 경찰에 신고하거나 여성폭력 지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6%(중복응답)뿐이었다. 대부분은 대응방법을 몰라 참거나, 보복이나 소문이 두려워 참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 이탈 여성들이 젠더 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경찰 신고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주거지 이전 제한을 꼽았다. 북한 이탈 주민은 하나원 퇴소와 함께 정해진 지역과 주거지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이탈 주민이 처음 받게 되는 임대주택은 2년간 이사할 수 없다는 특약이 있다. 2년 안에 이사하려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거나 다른 공공임대주택으로 옮기게 된 경우 △주거가 확보된 사람과 혼인한 경우 △질병 치료를 위해 6개월 이상 의료기관에 입원한 경우 △다른 지역에 소재한 대학 및 대학원에 재학 중인 경우 등 10가지 조건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20조 6항에 따라 보호대상자의 거주지가 노출되어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었거나 입을 우려가 명백한 경우에는 주거 이전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인지 따져야 하고, ‘주거 이전에 필요한 지원’이 곧장 다른 임대주택을 지원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이사를 고려하기는 어렵다.

성폭력 피해를 본 북한 이탈 여성에게 법률상담을 지원하는 전수미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는 “하나원 퇴소 뒤 북한 이탈 주민이 살게 되는 임대주택은 저렴하기 때문에 (임대기간 2년이 지나더라도) 다른 주거지로 이사하기 쉽지 않다”며 “북한 이탈 여성은 집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트라우마를 안은 채 피해 장소에서 계속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또 “젠더 폭력으로 인해 거주지 이전을 요청할 경우’를 포함하는 등 북한 이탈여성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주거지 이전을 지원할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이원영 의원은 “북한 이탈여성들은 젠더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정착지원 제도 마련을 위해 국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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