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스티븐 연은 왜 그리 화가 났는가?
아이즈 ize 정명화(칼럼니스트)
"꼭 뭐가 있다니까!"
되는 일이 없다. 꼬이고 얽혀만 가는 두 남녀의 악연이 가슴을 답답하게 죄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은 미국 오렌지카운티에서 살아가는 아시안계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유독 화(火)가 많은 두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죽일 듯한 싸움을 시작하고 그들의 복수극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
잡다구레한 수리일을 도급받는 남자 대니(스티븐 연). 숯불화로를 환불하러 간 대형마트 '포스터스'에서 경적을 울리는 고급 차량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다. 손가락 욕을 날리며 유유히 떠나는 차의 뒤를 쫒아 대니는 거친 추격전을 벌인다. 대니와 추격전을 벌인 상대차주는 바로 에이미(엘리 웡)다. 에이미는 식물 갤러리를 운영 중인 사업가로, 포스터스 체인을 운영 중인 재벌에게 자신의 사업을 매각하려 한다. 고급 주택가에서 고급차를 몰며 유명 예술가의 아들이자 도예가인 남편 조지와 어린 딸을 둔 에이미는 겉보기에 완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선량하고 다정하지만 생활력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에이미는 가장의 역할을 떠안아 수년간 사업에 매달려왔다. 지친 에이미는 이제 '포스터스' 회장에게 갤러리를 매각하고 딸과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매각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이미의 차를 놓치고 울분에 차 집에 돌아온 대니 역시 되는 일이 없는 남자다. 모텔을 운영하던 부모님은 사촌형이 도매로 받아온 가짜 분유를 모텔에서 팔다 적발돼 사업을 접고 현재는 한국에서 삼촌 일을 돕고 있다. 동생 폴은 게임과 코인으로 허송세월하고 대니는 집안을 책임지고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각각의 스트레스와 부담,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가진 대니와 에이미는 서로를 향해 가슴 깊이 눌러둔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추크츠방. 어떤 수를 쓰던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는 체스 용어다. '성난사람들' 속 대니와 에이미는 계속해서 악수(惡手)를 두며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끝장을 보려 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한국계 미국인인 대니와 중국계 에이미. 미국에서 자라 미국식 사고와 영어를 쓰며 살아가지만, 두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아시아계 특유의 책임감과 억눌린 감정이다. 완벽한 미국인도 아닌, 아시아인도 아닌 이민 2세대의 불분명한 정체성과 혼란스러움이 이들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욕망과 분노를 억눌러왔던 둘은 급기야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극단적인 분노를 터뜨린다.
영어 제목 '비프(Beef)'는 '불평', '투덜거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성진 감독이 대본과 제작을 맡은 '성난사람들'은 몇몇 한국어 대사를 제외하고 모두 영어로 이뤄져있다. 총알같이 쏴대는 에이미, 투덜투덜거리는 대니, 비어와 욕을 남발하는 사촌형, 미국 상류층의 우아하지만 거만하고 냉소적인 대화 등 '말맛'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상대의 집에 오줌을 싸고 도망가거나 트럭에 낙서를 하는 등 유치하게 시작했던 복수는 점점 더 수위를 높여간다. 여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두 사람의 대결과 이를 통해 벌어지는 나비효과, 점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가는 사건이 이어지며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상황이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는 반면 두 사람은 내면 깊이 숨겨져 있던 문제와 외로움을 직면하고, 그제서야 스스로를 올곧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걷잡을수없는 분노를 자아냈던 상대가 바로 자신과 너무 닮았다는 것, 아시아계 이민 2세대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결핍이 동일하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작품은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성난 사람들'은 엔딩부의 터져나오는 폭발적인 희열을 위해 긴 시간 치열하게 달려간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말맛의 향연, 예측불가능한 사건의 연속, 코미디로 일가를 이룬 두 주연배우의 연기, 그리고 드라마를 장식하는 상징들과 은유가 잘 만든 작품으로의 가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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