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늘자 '브릿지론→본PF' 지연…건설사 도산 현실화

권한일 2023. 4. 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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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대금 통한 대출 상환 '한계봉착'
폐업 건설사, 11년 만에 최고 수준
"세제 혜택 나서야 VS 시장 자구책 먼저"

미분양 급증으로 건설사들이 연쇄 도산하고 있는 가운데 PF대출과 자금조달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뉴시스

[더팩트ㅣ권한일 기자] 전국 미분양 주택 수가 위험 수위인 7만 가구를 넘어선 가운데 투자자들의 원리금 회수 우려가 커지면서 브릿지론의 본PF(프로젝트파이낸싱) 전환도 지연되고 있다.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이 치솟고 브릿지론 상환 지체로 공매 처리되는 사업장이 늘어, 폐업 신고된 건설사 수는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건설업계에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20일 한국주택협회 데이터를 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미분양 주택 수는 총 7만 5438호로 2021년 9월(1만3800호) 대비 1년 반 만에 5.5배 가량 불어났다. 연초부터 상당수 건설사들이 분양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신규 분양 물량은 예년대비 60% 가량 줄었지만 미분양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다.

◆부실 화약고 '브릿지론'…책임준공 부메랑

최초 청약률이 급감하고 최종 미분양으로 이어지는 물량이 급증하면서 사업 수익성을 둘러싼 투자자들의 의문이 커졌다. 특히 원금 회수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기존 브릿지론의 본PF 전환이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브릿지론은 착공 전 토지매입과 초기 사업비 조달을 위한 단기·고금리 대출을 뜻한다. 통상 사전 분양 후 분양대금(계약금)으로 정상적인 브릿지론 상환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본PF로 전환된다. 하지만 분양 시장 침체로 전환이 대거 지연되면서 브릿지론 연체율이 치솟고 부실이 현실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금융권의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129조9000억 원으로 1년 새 17조원 넘게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들이 내준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은 10.38%에 달했다. 아울러 저축은행(2.05%)과 여신전문(2.2%) 등 자금 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업계 연체율도 급증했다.

심지어 본PF 실행 후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완공된 사업장에서도 최종 분양률 하락으로 대출원리금 상환이 지연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본PF 마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도급 계약 당시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은 건설사들의 재무상황이 악화되고 부도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건설사 파산 신청이 지방 중소건설사에서 중견 건설사로 전이되고 있다. /권한일 기자

◆연쇄부도, 소형→중견건설사 전이 양상

작년 하반기부터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점차 상위업체로 유탄이 퍼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충청권 중견 건설사 우석건설(도급순위 202위)을 시작으로 동원건설산업(388위)이 부도 처리됐고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대창기업(109위) 등도 법정관리(기업회생)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범현대가(家) 3세인 정대선씨가 최대주주인 HN Inc(에이치엔아이엔씨·133위) 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대 썬앤빌'과 '헤리엇' 등의 브랜드를 가진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분양에 나선 '속초 헤리엇 THE228'의 가구 절반 가량이 미달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통계를 보면 작년 9월부터 전국적으로 매월 30곳 이상의 건설사가 폐업 신고됐다. 올 1~3월 사이 폐업한 건설사는 119건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후 건설 경기가 침체에 빠졌던 지난 2012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다.

분양 대금으로 유동성이 공급되고 PF대출 상환으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미분양·미입주가 계속 늘어날 경우 우발 채무 발생에 따른 건설사 연쇄 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시중 은행들은 부동산PF 중도금 대출 조건으로 70~80%대 분양률 달성을 요구하고 있다.

속초 헤리엇 더228 조감도. 이 아파트 총 214가구 중 119가구가 미분양 되면서 시공사인 HN Inc는 직격탄을 맞았다. /에이치엔아이엔씨

◆정부 지원 긴요 vs 시장 논리 우선

주택산업연구원이 18일 내놓은 이번 달 주택사업 자금조달지수는 66.6으로 전월(78.5)보다 11.9포인트(p) 하락했다. 이 지수는 기준치인 100을 밑돌면 자금조달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주택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미분양 적체와 토지 매입 후 사업 추진 지연으로 건설사들의 자금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하반기까지 계속되면 주택업체 연쇄 도산과 금융권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미분양 주택 매입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등 연착륙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같은 상황을 과대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갑작스런 시장 악화로 일부 업체가 폐업하더라도 이를 건설산업 전반의 위기나 붕괴로 연결하기는 어렵다"면서 "몇몇 업체 도산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최근 발생되는 미분양은 과거 호황기에 추진된 사업들이 대부분이고 금리 급등 등 갑작스런 외부요인의 영향 큰 만큼 해당 요인이 호전되면 분양 경기도 개선될 것으로 본다"며 "분양가 할인 등 해결책은 시장에 맡겨도 된다"고 말했다.

k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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