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판 키운건 대규모 '갭투자'? 아파트 한동이 당했다[전세사기 확산]
"확산 가능성 커"…갭투자자 한때 1억 미만 아파트 싹쓸이
(서울=뉴스1) 황보준엽 기자 =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전세사기'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 보다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다. 아파트 한동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가는가 하면 피해액도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당시의 시장 환경을 지목한다. 전셋값의 급등으로 매매가와 갭이 줄어들면서 갭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조성됐던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최근 동탄신도시 주민 다수로부터 전세사기 의심 신고를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오피스텔을 250여채 소유한 임대인 A씨 부부는 피해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세금체납 등의 문제로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우니 오피스텔 소유권을 이전받으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부부 외에도 동탄신도시에 오피스텔 등 43채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모씨는 지난 2월23일 수원회생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지씨는 파산신청과 함께 면책신청도 함께 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산 및 면책은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 신청할 수 있다.
채권자 명단에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43명과 함께 카드사, 캐피탈 등도 포함돼 있다.
전세 사기범은 갭투자 방식을 활용해 집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갭투자란 전세금에 자기자본을 일정부분 보태거나 혹은 무자본으로 집을 사는 방식으로, 집값이 오르면 수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지금 같은 하락기에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집을 팔거나 다음 세입자를 받아도 기존 보증금만큼의 액수를 메우기 어려워서다.
지난 몇 년간은 갭투자자들이 진입하기 좋은 시장 환경이었다. 임대차법 이후 전셋값이 급등하며 매매가와 갭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화곡동 빌라왕'으로 불리는 김모 씨가 1139채의 빌라를 매입할 수 있었던 것도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통해서였다. 전셋값 급등 시기를 파고들었던 것인데, 매매가와 전셋값의 간극이 좁혀지자 자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수백, 수천채를 한꺼번에 사들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셋값이 급등했던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 시기 빌라 등을 수십, 수백채를 사들이는 이들이 많았다"며 "이전과 달리 지금처럼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집을 팔아도 다음 임차인을 구해도 이전 세입자의 보증금을 맞춰주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지난 2020년 정부가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주택에 대해 취득세 중과 예외를 인정한 뒤 지방 원정 투자가 증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019년~2021년 8월까지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과 법인은 총 1470명이었다. 개인이 269채를 매입한 경우도 있었으며, 법인의 경우 1000채 이상 사들인 곳이 3곳에 달했다. 가장 많은 아파트를 사들인 법인은 1978채를 매입했다.
당시 일부 지역에선 전세가율이 90%를 웃돌자 1000만원만 투자해도 1억~2억원 짜리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으는 일도 있었다. 평택, 구미, 아산 등 지방 중소 도시에선 갭투자가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1억원 미만 주택의 취득세 중과 예외로 지방으로 원정 투자가 크게 늘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 그런 주택들은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자체가 가격 방어가 되는 곳도 아닌 만큼 전국적으로 전세사기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며 "당시 1000만원 정도만 내고 수백채를 사들였었는데, 지금은 전셋값이 받쳐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wns83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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