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 피어나는 K콘텐츠 위기설 속 '몸값'이 거둔 쾌거의 가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K콘텐츠는 여전히 장밋빛인가.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을 거머쥐었고, <킹덤>에서부터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작품들이 K좀비 붐을 전 세계에 불러일으키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은 분명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장밋빛인가를 질문해보면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최근 공개된 K콘텐츠들에서 그때의 그 실험정신 같은 것들이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게 느껴져서다.
K콘텐츠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넷플릭스를 보면 이런 변화가 느껴진다. 최근 공개된 드라마 <퀸메이커>나 영화 <길복순> 같은 작품은 웰메이드인 건 분명하지만, 어딘가 신박하다 여겨질 정도의 실험정신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상반기에 두드러진 넷플릭스 K콘텐츠는 <피지컬:100>이나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같은 예능과 다큐멘터리였고 그나마 글로벌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는 <더 글로리> 정도였다.
K콘텐츠가 웰메이드라는 건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그 위상이 유지되고 더 높아지기는 어렵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기존 관습이나 틀에서 벗어난 참신한 실험정신들이 들어 있어서였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최근 K콘텐츠들이 실험정신보다는 웰메이드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느낌은 그래서 위상이 높아진 만큼 대중성과 상업성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성난 사람들> 같은 작품은 그래서 현재 웰메이드쪽으로 기울어가는 K콘텐츠를 반성하게 만든다. 스티븐 연이 주역을 맡았고 이성진 감독 같은 동양계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뭉쳐 만들어낸 이 작품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사건들이 야기하는 분노 같은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면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전개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글로벌 반응을 일으켰다.
웰메이드와 실험정신. 사실 어느 쪽만이 좋고 또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이 답일 수는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중성과 작품성(실험성)이 마치 서로 상반된 선택이라고 보는 시각은 이제 막 세계의 시선을 받기 시작한 K콘텐츠에는 중대한 함정일 수 있다. 요즘처럼 콘텐츠 홍수인 시대에 익숙한 틀을 벗어나는 작품성이야말로 오히려 글로벌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은 그 가치를 곰곰 새겨볼 필요가 있다. 단편영화 원작을 바탕으로 이를 시리즈 형태로 확장시킨 <몸값>은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드라마의 틀을 완전히 깨버리는 실험을 감행했다. 몸값 흥정이 벌어지던 건물에서 지진이 벌어지면서 생겨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대본도 그렇지만, 이를 원테이크로 찍어내는 연출의 실험도 참신했고, 그 위에서 펄펄 나는 진선규, 전종서, 장률의 미친 연기도 보는 이들을 짜릿하게 만들어줬다.
굳이 <몸값>의 가치를 새삼 다시 거론하게 되는 건, 최근 국내 제작사와 플랫폼들 사이에서 솔솔 피어나고 있는 K콘텐츠의 위기설 때문이기도 하다. 위기는 정점의 위치에 도달했다고 느꼈을 때 시작된다고 하던가. 최고의 위치도 아니지만 일찍 샴페인을 터트려 버린 듯한 K콘텐츠들은 언젠가부터 그만큼 오른 '몸값(제작비)'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배우들의 출연료와 작가의 대본료 심지어 스타 연출자의 연출료까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이러한 쏠림현상의 구조적 문제들이 온전히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 작품들은 오른 비용만큼 실험성보다는 대중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가성비에서 대체불가처럼 보였던 K콘텐츠를 대체할 수 있는 타국의 콘텐츠들이 글로벌 시장에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내 토종 OTT들은 플랫폼 구축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왔지만, 그만한 수익을 내지 못함으로써 흔들리고 있고, 코로나19와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영향으로 잔뜩 위축된 영화업계와 극장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드라마부터 영화를 모두 아우르는 K콘텐츠 전반에 대한 거시적 관점에서의 대책을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위기 극복의 기본 전제가 되는 건 K콘텐츠만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건 가성비가 있는 작품성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몸값>은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K콘텐츠의 현 위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작품 속에서 결국 몸값만을 흥정하는 이들은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것이 목숨을 걸만한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는 걸 확인한다. K콘텐츠가 혹여나 이러한 위기 상황이라는 걸 간과한 채 샴페인을 먼저 터트리며 몸값만을 높이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봐야 한다. 결국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적당한 웰메이드의 상품이 아니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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