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기대 과하다” 경고에도…단기 금리, 기준금리보다 낮은 이유는
SVB 사태 이후 美 긴축 종료 기대감
금융불안에 단기시장으로 자금 이동
정부 ‘대출금리 인하’ 압박도 영향
통화·금융 당국 엇박자 지속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최근 단기물 금리 하락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단기물 금리가 떨어지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면서 기준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총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연내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하면서 단기물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금융불안이 커지면서 자금이 단기 시장으로 몰린 점도 이런 흐름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3.45%를 기록했다. CD 91일물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한 지난 11일부터 7거래일 연속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다. 국고채(국채) 1년물 금리는 3.237%, 통화안정증권(통안채) 91일물은 3.239%로 약 한 달간 기준금리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채권시장에 반영된 결과다.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연 3.5%로 2연속 동결하면서 시장에서는 국내 금리 인상 사이클(기조) 사실상 끝났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한국은행이 이르면 연말에 금리 인하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기 시작했다.
이 총재가 “지금 단기금리인 90일 통안채 금리 등 단기 금리가 떨어지는 것은 시장에서 좀 과도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본다”고 재차 강조했음에도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SVB 사태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5월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만 더 올린 뒤 금리 인상을 종료할 것이란 관측도 연내 금리 인하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융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지속되면서 금융정책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도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근 대출금리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시작한 2021년 8월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14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640~5.801%였다. 하단 기준으로는 2021년 9월 말(3.220%) 이후 최저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시중은행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면서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한 뒤로 은행들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잇따라 낮춘 영향이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의 인위적인 금리 인하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긴축 기조를 장기간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최근 본격화된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 경기 침체 우려, 부동산 시장 냉각 등을 고려하면 연말로 갈수록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거나 동결할 요인보다는 금리를 내릴 요인이 더 많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과 시장 간의 시각 차는 작년부터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라며 “경기와 물가가 지금 흐름을 유지한다면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연말까지 시장 금리는 한 차례 인하를 반영한 수준으로 등락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SVB 파산 이후 금융불안이 고조되면서 투자 자금이 단기물로 쏠린 점도 단기물 금리 하락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임재균 연구원은 “1년 미만의 채권 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는 것에는 수급적인 요인도 존재한다”며 “외국인들의 재정 차익 거래, 단기자금 ETF의 잔액 증가, 머니마켓펀드(MMF)의 확대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도 “단기 금리가 이렇게 많이 내려간 이유는 SVB 사태 이후 연준이 피벗(pivot·정책 전환)을 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그로 인해 투자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우리 국채 시장에 들어오는 등의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를 꺾을 만한 신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단기물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추가 긴축 등 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신호가 없으면 단기물 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터리 열폭주 막을 열쇠, 부부 교수 손에 달렸다
- 中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공개… 韓 ‘보라매’와 맞붙는다
- “교류 원한다면 수영복 준비”… 미국서 열풍인 사우나 네트워킹
- 우리은행, ‘외부인 허위 서류 제출’로 25억원 규모 금융사고… 올해만 네 번째
- [증시한담] 증권가가 전하는 후일담... “백종원 대표, 그래도 다르긴 합디다”
- ‘혁신 속 혁신’의 저주?… 中 폴더블폰 철수설 나오는 이유는
- [주간코인시황] 美 가상자산 패권 선점… 이더리움 기대되는 이유
- [당신의 생각은] 교통혼잡 1위 롯데월드타워 가는 길 ‘10차로→8차로’ 축소 논란
- 중국이 가져온 1.935㎏ 토양 샘플, 달의 비밀을 밝히다
- “GTX 못지 않은 효과”… 철도개통 수혜보는 구리·남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