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번역한 김지영 "민담 같은 문체·비꼬는 유머에 신경 썼죠"

이은정 2023. 4.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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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 올라
"번역은 두 문화의 다리…작가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천명관의 '고래'를 영역한 김지영 번역가 [김지영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국적인 구수함이 배어있지만, 이 세상 모든 독자가 천명관 작가님의 유머와 박진감 있는 스토리, 풍부한 상상력에 푹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천명관의 '고래'(영문판 제목 Whale)를 영어로 옮겨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함께 오른 김지영 번역가는 이 소설이 영미권 독자들에게 다가갈 매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번역가는 20일 연합뉴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부커상 후보에 오른 것을 계기로 더 많은 독자가 '고래'를 읽었으면 좋겠다"며 "훌륭한 작가, 번역가들과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오른 것도 큰 영예였는데, 최종 후보까진 생각하지 못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품에 공동 기여한 작가와 번역가를 함께 후보에 올리고 상금을 균등하게 지급한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김 번역가는 한국과 미국, 캐나다를 오가며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사랑해 자연스럽게 번역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미국 뉴욕의 출판사 '아키펠라고 북스'(Archipelago Books)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잠시 일했지만 번역을 병행하고자 다른 직장을 찾았다.

그는 "어머니가 번역가로 활동해 어렸을 때부터 번역 일을 잘 알고 있었다"며 "아키펠라고 북스에서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2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고래'와 만난 것도 아키펠라고 북스와의 인연 덕이었다. 비영어권 책을 출간하는 이 출판사는 천명관 작가의 영국 에이전시와 영문판 출간 계약을 했다.

김 번역가는 "독자로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고, 20년이 지나 다시 한번 (출판사) 설립자 질 스쿨만과 작업할 기회여서 번역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천명관 '고래' 영문판 표지 [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고래'는 산골 소녀인 금복의 성공과 몰락을 중심으로 국밥집 노파, 금복의 딸 춘희의 기구한 삶이 얽혀있다.

악행도 서슴지 않는 선명한 캐릭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서사, 토속적이고 거친 표현, 냉소적인 유머와 풍자가 난무해 영어로 옮기는 작업이 꽤 난해했을 듯하다.

그러나 김 번역가는 "원문이 훌륭해 술술 읽혔고 번역할 때도 모든 게 원활하게 풀어지는 느낌이었다"며 "특히 민담을 들려주는 듯한 문체와 비꼬는 듯한 유머를 제대로 옮기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유머는 문화와 언어적 차이 때문에 자칫 건조하게 번역될 수 있어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할 때 인물 이름을 적절하게 골라야 할 때가 많다"며 '고래'에선 금복과 얽힌 남자들을 칭하는 '걱정이', '칼자국'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칼자국'은 직역하기보다 '더 맨 위드 더 스카(The man with the scar·흉터 있는 남자)라고 번역했다"며 "도시 전체를 장악하는 무시무시한 깡패를 '나이프 마크'(knife mark·칼자국), '스카'(scar·흉터) 같은 별명으로 부르지 않을 것 같았다. 풀어서 명칭 하는 게 신비스럽고 민담 식 문체와 어울릴 것 같았다"고 했다.

김 번역가는 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던 외할머니와 자라면서 읽은 한국 책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외할머니께서 민담, 고전소설, 설화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과장된 몸짓과 익살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해주셔서 배를 잡고 웃은 생각이 나요. 또 문체나 서사 면에선 상당히 다르지만 한국 역사를 광범위하게 다룬 대하소설인 박경리 작가의 '토지', 국밥집 노파의 가난하고 기구한 삶을 묘사한 부분에선 초등학교 때 끼고 살았던 '몽실언니'도 떠올랐죠."

그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받았으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김영하의 '빛의 제국', 조경란의 '혀' 등 다수의 한국 작품을 영역했다.

그는 "번역은 두 문화와 언어 사이에 놓인 다리 같다"며 "그런 이중적인 공간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모험"이라고 말했다.

또 더 많은 한국 문학이 해외 독자들과 만나려면 번역가를 작가와 동등하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커상처럼 (한국) 문학계와 출판계도 작가와 번역가를 동등하게 대우해주길 바란다"며 "초창기에 많은 번역가가 불리한 계약을 하는데, 모든 번역가가 샘플 번역료를 받고, 번역물 저작권 보호를 받고, 인세를 받는 게 정상화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조경란의 '복어'와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을 번역하고 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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