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정현, ‘큰’ 이정현 이상으로 성장할까?
세상에는 많은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이는 스포츠계도 마찬가지다. 정말 특이한 이름이 아니라면 겹칠 수밖에 없고 그런 가운데 동시대 같은 종목에서도 동명이인이 종종 등장한다. 아쉽게도 경쟁이 치열한 스포츠계에서 동명이인이 둘 다 잘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그 결과 어느 한쪽이 상대적으로 잘하거나 인기가 높아져 버리면 아닌 쪽은 확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해당 이름을 언급하면 그 선수부터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KBL에서도 그런 케이스는 적지않다. 혼혈 파워포워드 이동준에 묻혀버린 슈터 이동준이 대표적이며 스타들과 동명이인이었던 또 다른 김동우, 강병현, 이승현, 이상민 등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먼저 활약했어도 동명이인 후배가 더 잘해버리면 묻히는 것은 순간이며, 유명한 선배와 이름이 같더라도 실력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화제성은 단발성에 그쳐버리기 일쑤다.
그런가운데 이정현이라는 이름은 아주 특별한 의미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본래있던 이정현(36‧190.3cm)이라는 스타가 레전드급으로 커리어를 묵직하게 쌓아가는가운데 이름은 물론 출신학교, 주포지션, 띠(토끼띠)까지 같은 또 다른 이정현(24‧187cm)이 범상치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동명이인인 관계로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구분을 하기위해 ‘큰’ 이정현, ‘작은’ 이정현 혹은 더 줄여서 ‘큰정현’, ‘작정현’으로 불리기도 한다.
별다른 뜻은 없다. 단지 먼저 활약한 쪽에게 ‘큰’, 이후에 데뷔한 선수에게 ‘작은’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 뿐이다. ‘큰’ 이정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다. 2010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프로 무대에 입성한 이후 상위권에서 꾸준하게 활약했고 역대 최고 2번 후보에 오를만큼 높은 명성과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정규리그 통산 582경기에서 평균 13득점, 2.9리바운드, 3.6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중이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중인 점을 감안했을때 누적기록 등은 더욱 두터워질 것이 분명하다. 평균 출장시간이 29분 17초에 달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랜시간동안 팀내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꾸준히 자신의 몫을 해주고 있다.
노쇠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있고 실제로도 전성기에서 조금씩 내려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시즌에도 삼성에서 54경기에 출전해 평균 25분 52초를 뛰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에 정규시즌 MVP도 수상한바 있으며 KCC시절에 이어 삼성에서도 주장을 맡는 등 특유의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이정현이 대단한 것은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슬럼프없이 쭉 일정 수준 이상의 클래스를 유지하며 활약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노장임에도 지나치게 긴 출장시간, 떨어진 에너지레벨로 인한 수비문제 등을 지적받고 있으나 이정현 나이에 그만큼 하는 선수도 흔치않다. 적어도 KBL역사에 한획을 긋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작은’ 이정현이 프로무대에 발을 디딜 무렵부터 ‘큰정현만큼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을까?’에 적지않은 관심이 쏠렸다. 대학 시절까지의 활약상이나 가지고 있는 재능의 크기에서 아성에 도전해볼만한 재목으로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정현은 기대치에 부응하는 성장세를 가져가고 있다. ‘큰’이정현도 잘했지만 ‘작은’이정현 또한 동나이대에서 적수가 없을만큼 벌써부터 스타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 ‘큰’ 이정현 1년차 기록 ☞ 54경기 출전, 평균 출전시간 30분 38초 / 평균 13득점, 2.7리바운드, 2.8어시스트, 1.3스틸
◆ ‘작은’ 이정현 1년차 기록 ☞ 52경기 출전, 평균 출전시간 23분 26초 / 평균 9.7득점, 2.3리바운드, 2.7어시스트, 1스틸
◆ ‘큰’ 이정현 2년차 기록 ☞ 54경기 출전, 평균 출전시간 24분 31초 / 평균 9.5득점, 2.7리바운드, 2.1어시스트, 1.1스틸
◆ ‘작은’ 이정현 2년차 기록 ☞ 52경기 출전, 평균 출전시간 34분 2초 / 평균 15득점, 2.6리바운드, 4.2어시스트, 1.7스틸
반면 ‘작은’ 이정현은 신인시절 백코트 파트너가 이대성이었다. 워낙 슈퍼 루키로 기대가 컸던지라 출장시간은 적지않게 받았지만, 볼 소유 시간이 길고 동료를 살려주기보다는 본인 공격에 특화된 선배 이대성과 함께 했던지라 원활한 호흡보다는 ‘너한번 나한번’의 성격으로 공격 스타일을 가져갔다.
하지만 팀 사령탑으로 김승기 감독이 부임하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다. 여러 재능있는 선수를 스타로 키워낸 김 감독의 눈에도 이정현은 ‘될성싶은 떡잎’으로 보였다. 확신이 서자 망설이지 않았다. 이대성을 내보내고 본격적으로 이정현 키우기에 나섰다. 이정현은 성장했다. 본래부터 가지고있던 에이스의 자질에 팀을 이끄는 ‘수’까지 더해졌다.
더 깊어진 2년차 젊은 천재는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날았다. 절대 약세로 평가받던 현대모비스와의 6강 대진을 승리로 이끌었고,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4강에서 격돌한 우승후보 KGC에게도 한방 먹여줬다. 전설들을 쫓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지만 ‘양동근의 단단함에 김선형의 다이나믹함까지 겸비했다’는 극찬까지 쏟아졌다. 어쩌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향후 한국 농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재목의 탄생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현재의 ‘작은’ 이정현이 아무리 잘해도 이제 2번째 시즌을 치른 선수가 ‘큰’ 이정현과 비교되기에는 아직은 많이 이르다. 제대로된 평가는 ‘작은’ 이정현 또한 노장이 된후 데이터가 쌓인 상태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과연 10여년 이상 시간이 흐른후 두 이정현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갈릴까? 이정현이 지나간 자리를 이정현이 다시 걷고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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