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의 숨멎 연기가 시청자 마음 빨아들이는 '종이달'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2023. 4. 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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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사진제공=KT 스튜디오 지니

"안돼요." "안돼요, 알고 있어요."

배우 김서형이 주연으로 나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니TV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달'(극본 노윤수, 연출 유종선) 2회에서 유이화(김서형)와 윤민재(이시우)가 나눈 대사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입을 맞췄다. 안 된다면서, 알고 있다면서 결국 저지르고야 말았다.

유이화는 엄연히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그것도 그동안 흠잡을 데 없는 단정한 모습의 현모양처로 살아왔다. 그런 이화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윤민재와의 입맞춤은 처음에는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사고라고 표현하며 마치 사고를 수습할 수 있을 듯 여겼지만,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지낼 곳이 없는 민재를 호텔로 데려가고, 점점 과감해지는 모양새가 끝내 돌이키지 못할 분위기다.

이처럼 '종이달'은 안 되는 줄 알면서 결국 저지르고 마는 이화의 이야기다. 비단 민재와의 관계만이 아니다. 자신을 숨 막히게 하는 집에서 해방되기 위해 은행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VIP 고객들의 돈을 몰래 가져다 쓰면서 점점 횡령액이 커지고 있다.

이화의 행동을 구구절절 합리화할 수도 있다. 이화의 주변 상황이 이화를 탈선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사진제공=KT 스튜디오 지니

출세와 성공이 지상 최고 목표인 남편 최기현(공정환)에게 이화는 그저 말 잘 듣는 순종적인 아내, 또는 자신의 성공에 도움이 될 장식품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거나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이화의 마음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매너 있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화를 인격적으로 대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 남편과 껍데기뿐인 결혼생활을 하는 이화가 일탈을 꿈꿀 만도 하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점원들의 행동도 못마땅하다. 화장품매장에서 돈이 모자라 구매를 고민하자 당장 다른 손님을 응대하러 가버린다. 단 10만원에 점원이 태도를 바꾸는 것이냐며 화가 불끈 치민 이화는 고객의 돈에 손을 대고 화장품을 사버린다. 곧바로 ATM기에서 돈을 찾아 돈봉투를 채우지만, 그렇게 시작된 횡령은 점점 대담해진다. 횡령한 돈으로 백화점 점원이나 호텔 직원들의 친절을 사는 일에 익숙해진다.

이화가 호의를 베풀고 선의로 대한 VIP 고객들의 태도도 불편하다. 사채업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고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돈을 숨기고 차명계좌를 쓰는 박병식(장항선)이 이화에게 선물이라고 준 롤케이크 박스 안에 여자 속옷이 담겨 있었다. 희롱당한 이화는 고약한 노인네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차명계좌에서 돈을 찾아 그의 손자 민재에게 준다. 영화 연출을 하며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민재에게 그 돈이 돌아가는 게 맞다고 여긴다.

횡령과 불륜으로 선을 넘은 이화도 계속 아차 싶은 순간이 오며 적어도 횡령한 돈은 되돌려 놓으려 노력한다. 모든 걸 돌이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화면에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며 지켜보는 사람들을 한없이 긴장하게 만든다. 

사진제공=KT 스튜디오 지니

사실 이화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아껴줄 상대와 함께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남편도, 백화점 점원도, 은행의 VIP 고객들도 이화를 각자의 입맛대로 대하니 이화가 뿔이 났던 것이다. 4회에서 민재와의 동침 후 독백으로 '기다렸어. 소중한 걸 다루듯이, 아름다운 걸 어루만지듯이 만져주기를, 줄곧 기다렸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첫회에서 태국으로 도주한 장면이 나왔던 만큼 이화의 최후에 궁금증이 쏠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불나방이 되기로 한 이화의 폭주에서 시선을 거두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총 10부작으로 예정된 '종이달'이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려면 새로운 동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화의 친구 류가을(유선)과 강선영(서영희) 등이 등장할 때면 활력이 생기고 웃음을 머금게 되기는 하지만 거기에만 기대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다. 이화의 횡령과 불륜 이외에 다른 새로운 사건이 추가되어야 남은 6회를 흥미롭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종이달'의 장르가 서스펜스라고 하니 무슨 사건이 벌어지긴 할 모양이다.

또한, 무엇보다 김서형의 숨을 멎게 하는 연기가 드라마를 멱살 잡고 끌고 가듯 견인하는 형국이라 쉬이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시청자를 압도하는 김서형이 이번에도 뭐든 빨아들일 듯한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하며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한다.

사진제공=KT 스튜디오 지니

앞서 이화는 민재와 대화에서 왼손잡이지만 왼손잡이냐는 질문이 받기 싫어 밥 먹을 때 오른손을 써서 사람들이 오른손잡이라 생각하면, 그런 자신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인지 스스로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때 민재는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답했다.

화려해 보이는 밤은 가짜지만 그래도 좋다는 대사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아마도 '종이달'은 이화의 횡령과 불륜이 맞고 틀리고를 생각해보라는 게 아니라 한 번쯤 내가 좋은 대로 하고 살고 싶은, 그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드라마인가 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게 만드는 게 김서형의 미친 존재감과 연기력이다.

일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종이달'이 갖가지 감정의 디테일들을 살려내는 김서형의 깊은 연기로 또 하나의 웰메이드 드라마로 완성됐다. 그 힘으로 현재 열리고 있는 칸국제시리즈페스티벌 비경쟁부문 랑데부 섹션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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