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은 계획이 다 있었다…LG화학 ‘이유 있는’ 주가 반등
● 주가 40만 원→70만 원 상승세
● “잠재력 LG엔솔 못잖아”
● 배터리 소재 강화로 석유화학기업 一邊倒 탈피
● 그룹 차원 미래 먹거리 바이오 사업도 ‘탄탄’
2021년 7월 열린 CEO(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LG화학 역사는 '분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이후 무려 4개 회사가 LG화학에서 떨어져 나왔다. 2001년 LG생활건강, 2002년 LG생명과학, 2009년 LG하우시스(현 LX하우시스), 2020년 LG에너지솔루션이다.
마지막 주자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2월 출범했다.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 그동안 집중된 투자, 매출 규모 등을 고려하면 기존 분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분할 방식도 이전 회사들과 달리 물적분할 방식을 선택해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걱정은 기우였다. 결과적으로 이전 분사 사례와 마찬가지로 우려를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분사한 지 2년 4개월, LG화학의 성장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다 계획이 있었던 신학철 부회장
모회사 디스카운트란 증권시장에 모회사와 자회사가 함께 상장돼 있어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LG화학 주가를 끌어올린 원동력이 배터리 사업이었던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의 독립 이후 이를 대체할 만한 사업을 제시하는 게 우선과제였다.
신학철 부회장이 제시한 해답은 3대 신사업이다. 신 부회장은 2030년에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한 직접 사업으로만 매출 60조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특히 매출의 절반인 30조 원을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신사업에서 창출하겠다고 했다.
2021년 7월 신 부회장은 온라인 생중계 기자간담회에서 3대 신사업에 2025년까지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전지 소재가 6조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2월 투자자 설명회를 통해서는 전지 소재 매출을 2021년 1조7000억 원에서 2030년 21조 원으로 12배 넘게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 목표는 지난해 말 2027년 20조 원 달성으로 다시 수정됐다. 달성 시점이 3년이나 앞당겨졌다.
LG화학은 현재 순항하고 있다. 지난해 전지 소재 사업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업황 악화 탓에 저조한 실적을 거둔 석유화학사업부문의 부진을 메웠다. 지난해 석유화학사업부문은 매출 21조7000억 원, 영업이익 1조750억 원을 거뒀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4% 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했다. 영업이익은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첨단소재사업부문은 매출 8조 원, 영업이익 923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6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약 4배 뛰었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주력 석유화학사업 부문과 사실상 어깨를 나란히 했다. LG화학 주가도 최근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70만 원대를 회복했다. 증권가에선 "LG화학의 첨단소재사업부문이 LG에너지솔루션 못지않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자신감의 근원, 양극재
지난해 5월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의 양극재 자회사인 B&M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은 LG화학의 구미 양극재 공장에 B&M이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설립된다. 지분율은 LG화학이 51%, B&M이 49%다. 2025년까지 약 5000억 원이 투입돼 지어지는데, 단일 공장 기준으론 세계 최대 규모다.
LG화학은 미국 테네시주에도 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연간 12만t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여기에만 약 4조 원이 투입된다. 미국 내 최대 규모로 2025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계획대로면 현재 연간 9만t 수준의 양극재 생산능력이 2027년 34만t에 이르게 된다.
LG화학의 유럽 양극재 공장 설립 계획도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비슷한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공개하며 현지 생산을 하게끔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LG화학은 미국에 이어 유럽에도 생산기지를 마련하며 양극재 사업에서 경쟁력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LG화학의 기술력은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2000년대 후반부터 LG화학은 양극재를 자체 생산해 왔다. 에코프로에 이어 두 번째로 빨랐다. 품질 안정성을 조기에 확보한 상황이라 에너지 밀도가 높고 내구성이 좋은 하이니켈, 단결정 양극재 개발에서도 앞서 있다.
이전까진 대부분의 물량이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에 판매된 것과 달리 외부 고객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 LG화학은 원재료 가격 하락이 없다면 양극재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두 자릿수를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설립 중인 공장이 향후 가동에 돌입하면 양극재 사업의 실적 기여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분리막·전구체·원재료… 커지는 2차전지 밸류체인 존재감
LG화학은 분리막 사업도 하고 있다. 8년 전 수익성을 이유로 철수했다가 2021년 다시 진출했다. 지난해 LG화학은 일본 도레이와 손잡고 헝가리에 분리막 합작법인도 세웠다. 2028년까지 1조 원 이상이 단계적으로 투입된다. 지분율은 50%씩이다. 이곳에서 양산된 분리막은 폴란드 LG에너지솔루션 공장 등 유럽 배터리 기업들에 공급된다.분리막은 배터리 생산원가의 약 15%를 차지한다. 양극재와 음극재의 접촉을 막아 화재를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배터리 사업 내재화를 추구하는 LG화학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분야다. 현재 LG화학의 분리막 사업 규모는 세계 3위권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켐코(KEMCO)와 배터리 재활용 및 전구체를 위한 합작법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도 설립했다. 켐코 51%, LG화학 49%의 지분율로 구성된다. 양사는 2024년까지 총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연간 2만t 이상의 전구체 생산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2024년 2분기부터 제품이 양산되며 여기서 만들어진 전구체는 청주에 있는 LG화학의 양극재 공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전지 소재에 들어가는 원재료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미국 IRA 등에 따라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안정된 원재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월 LG화학은 미국 광산업체 피드몬트리튬 지분 5.7%(109만6535주)를 7500만 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전지에 들어가는 리튬 원료인 리튬정광 약 20만t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리튬 약 3만t을 추출할 수 있는 양으로 고성능 전기차 약 50만 대에 들어가는 규모다.
또 하나의 카드, 바이오 사업
아베오는 200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설립된 회사다. 2010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임상개발·허가·영업·마케팅 등 항암제 시장에 특화된 종합적인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신장암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포티브다(FOTIVDA)'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했다. 현재 포티브다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임상도 진행되고 있다. 국내 기업이 FDA 승인 신약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LG화학이 이번 인수를 통해 단기간에 미국 내 항암 상업화 역량을 확보하는 한편,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다양한 자체 개발 신약을 출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은 1980년대부터 신약 개발을 시도해 2003년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경험 부족 등으로 성과가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바이오는 LG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 사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구광모 ㈜LG 대표가 충북 오송에 있는 LG화학 생명과학사업부문 R&D 시설을 찾아 "역량 강화에 주력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바이오를 배터리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잇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업으로 키워나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지난해 LG화학 생명과학사업부문은 연구개발(R&D) 비용으로 2760억 원을 썼다. 2000억 원을 썼던 2021년보다 38%나 늘어난 수치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셀트리온(4123억 원) 다음으로 많다. 매출 대비 비중은 무려 30.4%에 이른다. LG에너지솔루션 분사 전까진 항상 전지 관련 R&D에 가장 많은 비용을 쏟아 왔다. 이제 이 자리를 생명과학사업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늘어난다. 올해 4000억 원을 포함해 향후 5년 동안 R&D에 2조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R&D 투자를 통해 2030년 4종 이상의 신약을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전지 소재와 바이오 모두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와 함께 구주 매출을 진행해 2조5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추가 투자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등 비교적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고 있어 안정적인 현금 창출을 이어왔다. 올해 석유화학 업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경우 투자 여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은아 더벨 기자 goodgood@thebe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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