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매캐런 "석고→3D로 진화한 '유령' 가면…얼굴 완벽 복제"[문화人터뷰]
기사내용 요약
30년 넘게 '오페라의 유령', 가면· 특수분장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기술만 진화 중"
과거 가면 도난 사건으로 배우당 3개 보관
"가면으로 유령의 마지막 퍼즐 조각 완성"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지금은 공연장에 배우마다 3개의 가면을 보관하고 있어요."
1990년부터 30년 넘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가면 제작과 특수 분장을 맡아온 '가면의 아버지' 밥 매캐런 슈퍼바이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꼽았다.
과거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오프닝 나이트 행사 직후 유령의 가면을 도난당한 사건이다. 얼굴 절반을 뒤덮는 새하얀 가면은 '오페라의 유령'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너무 속상했어요. 새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 밤새 작업해야 했죠."
13년 만에 돌아온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지난달 30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공연은 6월까지 이어진 뒤 7월에 서울로 찾아온다. 최근 뉴시스와 서면으로 만난 그에게 비밀스러운 가면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밥 매캐런은 "가면은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 3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며 "제작하는 기술만 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뮤지컬계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걸작인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 1988년 뉴욕에서 초연됐다. 석고로 제작하던 가면은 현재 3D 방식으로 진화했다. 한국어 공연도 이번에 처음으로 3D 기술이 도입됐다.
그는 "우리는 각 배우의 두상을 완벽하게 복제해야 한다"며 "배우의 얼굴에 꼭 맞는 '맞춤형 제작'이며, 다른 사람의 얼굴엔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가면은 배우의 얼굴을 3D로 스캔해 제작된 흉상 위에 점토를 올려 조각해요. 이전엔 배우의 두상을 석고 형태로 제작하는 데만 최소 3시간 이상이 걸렸죠. 이제는 3D 프린팅과 스캐닝 과정이라는 발전된 기술을 통해 (약 5분 만에) 배우의 두상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복제할 수 있게 됐어요. 공간적 제약 역시 없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받은 데이터로 (자신의 생활지인) 호주에서도 제작할 수 있게 됐죠."
관객들이 볼 수 없는 가면 안은 어떨까. "최고급 올드 잉글리시 가죽으로 안감 처리를 했는데, 그 가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얇은 가죽이에요. 매우 얇기 때문에 내부에 잘 부착돼 배우가 가면을 편안하게 쓸 수 있죠."
유령의 깊은 상처인 가면 속에 감춰진 흉측한 흉터도 그의 손에서 빚어진다. "배우의 얼굴을 스캔한 복제본이 준비되면 유령의 흉터 부분을 조각한다"며 "반대편 얼굴과 균형을 이루되 흉터를 해부학적인 특성에 맞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분장을 완성하는 데만 최소 1~2주가 걸려요. 그 다음 석고로 복제해 제작한 후 배우 얼굴에 밀착하는 특수 분장 피스(조각)들을 제작해요. 유령의 특수 분장 세트는 한 번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연이 종료되면 버리는 일회용이죠. 한국 프로덕션에선 이번에 4명의 유령이 출연해 호주에 있는 제 작업실에 120개가 넘는 석고 틀이 있어요."
그는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의 분장이 아닌 (클로즈업도 염두에 두는) 영화 수준의 분장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때도 있다. 유령 역의 배우가 인터미션 이후 공연에 설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다른 배우가 대신 무대에 오르게 됐지만 관건은 분장이었다. "분장 시간이 70분 정도 소요되는데, (인터미션인) 20분 만에 완성해야 했죠. 동시에 두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붙어서 완성한 적이 있었어요."
그는 공연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에서도 특수 메이크업과 특수효과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매트릭스', '매드맥스2' 등 대형 할리우드 작품에서 유명 스타들과도 일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중 하나로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한 '매트릭스'를 꼽았다.
"전신 특수분장을 장장 8시간하고, 지우는 데만 3시간이 걸렸어요. 당시 6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일했는데, 자정에 분장을 시작해 오전 8시에야 촬영을 시작했죠. 영화엔 32개의 주요 SFX(특수 효과) 메이크업 샷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1~2개만 알아차릴 수 있어요. 사실 좋은 거죠.(웃음) 제 작업이 너무 완벽해서 특수 효과라는 걸 모르길 원하는 마음도 있잖아요. '매드맥스2'에선 눈에 멍이 든 설정의 멜 깁슨의 특수 분장에 조지 밀러 감독은 번거롭지 않겠냐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모든 포스터와 홍보 사진에 그 모습이 포함됐죠."
70살이 넘은 그는 지금도 젊은 청년처럼 왕성하게 활동한다. 13살부터 이 일을 시작해 17살에 실전으로 뛰어들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출발해 이후 귀, 코, 손가락을 잃은 이들을 위한 의료 보철물을 제작하면서 특수효과 및 특수분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폐막식에선 의료감독관을 맡았고, 야생 생존 TV쇼에선 '메딕 밥(Medic Bob)'으로 불리며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이력이 있다.
"병원에서 의사들과 함께 일하며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1970년대 초 미국에 일하러 가게 됐는데, LA에서 응급 의료 처리를 공부하게 됐죠. 그 후 구급의학과 응급 의료 의학에서 3개의 학위를 받았어요. 늘 야생에서 동물들과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야생 동물 생물학 학위도 땄죠."
호주 시드니 공연 당시 가면과 분장 총괄 제의를 받은 후 한국을 비롯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튀르키예, 모스크바, 두바이, 중국, 마닐라 등 세계 곳곳에서 '유령'과 함께해 왔다. 그는 "유령 역의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 가면을 건넬 때 마지막 퍼즐 조각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틴이 지하 미궁에서 유령의 가면을 처음 벗기는 장면에서 유령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보면 느낄 수 있어요. 이 장면이 제게도 매우 와 닿아요. 몇 달간 해온 가면과 분장 작업을 통해 마침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이 전설의 공연을 완성한 것을 보는 순간이죠. 첫 공연을 보면 심장이 뛰고,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인사하면 눈물이 고여요."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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