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가 3인치 커지자, 죽고 살고가 달라졌다

한겨레21 2023. 4. 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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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의 인생 뭐야구]MLB 베이스 크기 변화가 불러온 나비효과, 100도루도 가능할까
2023년 4월10일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삼루수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요르단 알바레스의 도루를 막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2023년 변화가 많았다. 가장 주목된 것은 ‘피치 클록’이다.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때 15초, 주자가 있을 때 20초 이내에 공을 던져야 한다. 타자도 8초 전까지 반드시 타석에 서야 한다. 경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이다. 실제로 피치 클록, 수비 시프트(변형) 제한 등으로 평균 경기 시간이 무려 31분(4월10일 현재)이나 줄었다.

11.43㎝라는 간발의 차이

정사각형 모양의 베이스 크기도 달라졌다. 선수 안전을 위해 가로세로 15인치(38.1㎝)에서 18인치(45.72㎝)로 커졌다. 베이스 크기와 선수 안전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베이스에 걸려 발목을 접질리거나 슬라이딩 도중 손이 수비수의 스파이크에 밟히는 등의 부상을 줄일 수 있다.

베이스 간 거리가 그대로 90피트(27.43m)인데 베이스 크기가 커졌다는 것은 1~2루 간, 2~3루 간 거리도 줄었다는 의미가 된다. 2022년보다 약 4.5인치(11.43㎝) 짧아졌다. 차이가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도루는 간발의 차이로 아웃/세이프가 갈린다. 도루 때 살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고,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메이저리그 개막 일주일 기록만 놓고 보면, 2023년 91경기에서 154차례 도루가 시도(경기당 평균 1.69차례)됐고 124차례 성공했다. 성공률은 80.5%에 이른다. 2022년에는 87경기에서 89차례 도루 시도(경기당 평균 1.02차례)가 나왔고, 61차례 성공했다. 도루 성공률은 68.5%. 2023년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살았다. 엠엘비닷컴(MLB.com)에 따르면 2023시즌 개막 주간 경기당 평균 도루 시도와 성공 횟수는 1997년(경기당 평균 2.35차례 시도, 1.66차례 성공) 이후 가장 많다.

도루 성공률(개막 일주일 기준)만 놓고 보면 처음으로 80%를 넘어섰다. 엠엘비닷컴은 개막 일주일뿐만 아니라 2023시즌 전체 도루 성공률이 사상 최초로 80%를 넘길 것으로 전망한다. 3인치(7.62㎝) 커진 베이스 크기가 불러오는 나비효과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시즌 70~80개 도루를 하는 선수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07년 호세 레예스(78개) 이후 7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없었다. 홈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대도가 설 자리가 없던 까닭도 있다.

메이저리그는 리키 헨더슨과 빈스 콜먼이 활약하던 1980년대 한 해 세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는 선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베이스 크기 변화로 시즌 100도루의 시대가 금방 다시 도래하지는 않겠으나 ‘한 방’ 일색이던 리그에 ‘한 발 더’의 색이 입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단들의 선수 스카우트 옵션이 더 생겼기 때문이다. 야구에 홈런만이 전부가 아님을 구단도 깨달을 터이다. 발 빠른 어린 선수들에게도 분명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될 것이고.

재미를 위한 거리 조정의 역사

야구 역사를 보면 리그 상황에 따라 메이저리그는 변화를 꾀해왔다.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사이 거리만 봐도 그렇다. 1881년 이전까지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사이 거리는 45피트(13.71m)였다. 하지만 1883년 공을 어깨 위로 올렸다가 던지는 오버핸드 투구가 가능해지면서 타자는 점점 공을 치기 어려워졌고 리그는 재미없어졌다. 이에 투구판 위치가 60.5피트(18.44m)로 조정됐다. 1892년 리그 타율은 0.245였으나 투구판이 3m가량 뒤로 밀린 이듬해에는 0.280까지 상승했다.

지명타자제도 리그의 박진감을 위해 탄생했다. 1960년대 메이저리그는 투수 전성시대였는데, 1968년의 경우 31승 투수(데니 매클레인)가 나왔지만 공격 분야에서는 타율 3할1리(0.301) 타자가 타율 1위를 기록했다. 투고타저가 이어지자 타격이 살아야만 리그가 흥행할 수 있다는 공감대 아래 수비는 하지 않고 공격만 하는 타자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73년 아메리칸리그에 처음으로 지명타자제가 도입됐다. 투수도 타석에 서는 전통을 고수했던 내셔널리그도 2022년부터 지명타자제를 실시 중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는 더 이상 타석에 서지 않는다. 투수 타율 기록 또한 그저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게 됐다(투수, 타자 다 하는 오타니 쇼헤이는 제외지만).

메이저리그는 2020시즌부터 10회 연장 때 승부치기(무사 주자 2루에서 공격 시작·포스트시즌 제외)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선수 수급 문제로 임시로 도입한 제도지만 2023년 초 영구적으로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무승부 없이 끝장 승부는 벌이되,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게 한 셈이다. 기록을 중시하는 야구 정통론자가 볼 때 연장전 유령 주자의 탄생이 마뜩잖을 수도 있지만 기나긴 연장 승부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제도, 규칙의 변화는 기록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즌 기록은 물론이고 통산 기록까지 뒤흔들게 된다. 물론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같은 경우는 ‘넘사벽'에 가깝다. 통산 1천 개 이상 도루를 기록한 이는 헨더슨(1406개)뿐이다. 그래도 누가 알겠는가. 3인치 커진 베이스가 계속 유지되는 먼 훗날에 그의 대기록을 위협할 누군가가 나타날지.

우리가 버려야 할 15인치 베이스는?

헨더슨은 미국 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내 기록의 가치를 위해 베이스 크기가 예전처럼 그대로 유지됐으면 했다”면서도 “경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면 괜찮다. 1차원적 공격 대신에 더욱 짜릿하고 생동감 넘치는 야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올스타 휴식기 전까지 최소 50도루’의 목표를 세웠던 콜먼은 “(요즘 시대 시즌 100도루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누군가 기록 가까이에라도 오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기록도 베이스 3인치 변화만으로 가능성이 열렸다. 변화를 우려하던 테리 프랭코나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감독은 “새 규칙들이 경기하는 데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효과가 있다면 새로운 규칙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통이라고 관습이라고 무조건 ‘옛것’만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옛것은 때로 낡은 것이 되고 조직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융통성도 필요하다. 야구 경기에서 베이스는 그저 경기 흐름을 이어가게 해주는 매개체일 뿐이니까.

누군가는 야구를 모르면 관심조차 없을 ‘15인치 베이스’에 계속 집착한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버려야 할 15인치 베이스는 과연 무엇일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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