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생애 최고의 아이언맨" 양팔 없는 '철인3종 국대'김황태의 중꺾마[진심인터뷰X장애인의 날]
"까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모두 꿈을 향한 과정이죠."
양팔이 없는 '철인 3종' 국가대표 김황태(46·인천시장애인체육회)에게 사이클 입문 과정을 묻자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이다. 도쿄패럴림픽 태권도 최초의 동메달리스트 주정훈(SK에코플랜트)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했었다. "선수촌에 처음 들어온 날, 한 선배가 '짐 들어줄까' 하는데 양팔이 없더라고요. 제 한손 장애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황태 형의 훈련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죠."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힘
해병대 789기, '30분 윗몸 일으키기'로 사령부 2등상을 받았다는 그는 불굴의 철인이다. 2000년 8월 업무중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후 불과 1년 반 만인 2002년 1월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70번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그중 17번은 '마라토너의 로망' 서브3(42.195㎞를 3시간 내 주파)다. 첫 완주한 풀코스는 2003년 2월 춘천마라톤 4시간 6분대. 그리고 2년 만인 2005년 동아마라톤에서 첫 서브3를 달성한 후 2015년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55분19초' 개인 최고기록을 작성했다. 매일 15㎞, 한달에 500㎞를 쉼없이 달렸다.
처음부터 '철인 3종'으로 패럴림픽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패럴림픽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2015년 무렵, 2018년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노르딕스키 선수로 발탁됐지만 이듬해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눈앞에서 뭔가 사라지는 느낌, 패럴림픽이 간절해졌다"고 했다. 재활 중이던 2020년 도쿄패럴림픽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2021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딸 만큼 발군이었다. 그런데 패럴림픽을 앞두고 그의 스포츠 등급이 또다시 제외됐다. 번번이 꿈이 꺾였지만 그는 꺾이지 않았다. 같은 인천장애인체육회 소속의 '데플림픽 동메달 철인' 오상미가 '철인 3종'을 권했다. 이천선수촌에서 마주친 '사이클 국대' 이도연은 맞춤형 자전거 정보를 기꺼이 전수했다. 김황태는 "내 발로 찾아간 종목은 철인 3종이 처음이었다"며 웃었다.
문재홍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진흥부 '철인3종 전담' 매니저는 김황태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자전거 한 대만 빌려달라고 하더라. 솔직히 '양팔이 없는데 어떻게?' 했다. 기대도 안했다. 태권도 국대선수가 선수촌에서 자전거를 엄청 열심히 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고 했다. 다시 만난 김황태는 기어변속까지 자유자재로 하는 '선수'가 돼 있었다. 2019년 경주 장애인철인3종 아시아선수권에 첫 출전해 2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2020년 도쿄패럴림픽 철인3종에서 그의 등급이 사라지며 또다시 출전이 무산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전국체전 2연패 후 2024년 파리패럴림픽, 철인3종에 김황태의 스포츠 등급이 포함됐다. 다시 꿈이 살아났다. 문 매니저는 "이 기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우물을 판 선수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철인3종 종목엔 PTWC(휠체어등급), PTS2~5(지체장애, 숫자가 작을수록 장애정도가 중함), PTVI(시각장애) 등 6개의 스포츠 등급이 있다. 김황태의 스포츠 등급은 PTS3. 전세계 유일의 양팔 절단 장애 선수다. 문 매니저는 "국제연맹에서 김황태를 매우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양팔 절단 장애인은 많지만 이들에게 어떻게 수영, 자전거, 달리기를 보급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김황태가 좋은 예,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선수를 보고 패럴림픽의 꿈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양팔 절단 장애인이 철인 3종을 한다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의문은 '수영과 자전거는 어떻게?'다. 스트로크와 호흡이 절대적인 수영은 김황태의 '취약 종목'. 오롯이 킥에 의존해야 한다. 오픈워터에선 물도 엄청 먹는다. 50m 기록은 50초~1분 사이. 취약 종목을 보완하기 위해 이천선수촌에서 하루 3500m 물살을 가른다. 장유정 철인3종 전문 코치는 "오픈워터는 물에 뜬 부표를 보고 가야 하는데 장애유형상 전방주시가 어렵다. 가장 힘든 종목이지만 훈련양을 늘려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수영에서 잃어버린 '초'를, 사이클, 달리기에서 만회해야 한다. 사이클은 어깨부터 손까지 제작된 의수를 찬다. 의수의 몫은 10% 남짓, 80% 이상을 온전히 강하게 단련된 코어 밸런스와 다리 힘에 의존한다. 자전거의 제품력도 당연히 경쟁력이다. 문 매니저는 "외국선수 대부분이 '슈퍼카'를 탄다고 하면, 그동안 김황태는 일반 차로 대회를 뛰면서 세계 5~6위 성적을 내왔다"고 했다. 내달 1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릴 월드시리즈 대회를 앞두고 국내 카본 전문 브랜드 '위아위스(WIAWIS)'가 김황태만을 위한 맞춤형 자전거를 제작,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랭킹 12위지만 사이클과 달리기 2종목에서 세계 톱 3위권인 김황태는 "사이클 기록을 더 단축할 희망이 생겼다. 동기부여가 된다"며 활짝 웃었다. 요코하마 대회 톱4 이상의 성적, 랭킹 톱10 진입을 목표 삼고 있다.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전 기준 국내 철인 3종 선수는 15명 남짓, 그는 동료, 선후배들의 참가를 독려했다. "철인 3종은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가지 못할 마성의 종목"이라면서 "누구든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했다.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철인 3종만의 매력에 대해 그는 "극한의 고통을 이겨낸 후 피니시라인을 통과할 때의 짜릿한 성취감과 희열"이라고 했다. '핸들러' 아내 김진희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경쟁력은 '일심동체' 눈빛 호흡이다. 장 코치는 "철인 3종은 수영, 사이클, 달리기에 종목간 전환(transition)을 포함해, 4종목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24년째 남편의 분신이 된 아내의 손은 '경쟁선수'보다 빠르다. 장 코치는 "의수를 끼고, 신발을 신고, 사이클로 옮겨타는 기록이 직접 혼자 하는 선수들보다 짧다"고 귀띔했다. 똑같은 국가대표 마음으로 매 대회 결연하게 나선다는 아내의 팔은 온통 멍투성이, 남편이 피니시라인으로 들어올 때까지 '부디 안전하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망부석' 아내는 "그래도 남편이 제일 좋아하고 열정을 쏟는 일이니까"라며 웃었다. .
파리패럴림픽을 꿈꾸는 '아이언맨' 김황태에게 스포츠는 무엇일까. "삶이자 꿈이자 목표이자 모든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선수들과 사회에 모범이 되는 선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철인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아직도 집안에 머물러 있는 동료 장애인들에게 '집 밖으로!'를 외쳤다. "항상 하는 말인데요. 무조건 밖으로 나오세요. 함께 운동하면 삶의 질도 높아지고 인생도 밝아집니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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