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날 작은 바람…"중증장애인 치과 가는 것 특별한 일 아니길"

조아서 기자 2023. 4. 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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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치도 전신마취…부산 상시 마취진료 치과 단 1곳뿐
"충치 치료 시기 놓쳐 심정지 발생, 중환자실 간 적도"
19일 부산대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찾은 성아름씨가 진료를 받기 위해 페디랩을 착용하고 있다.2023.4.19/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아름이 누워보세요~.”

“잠깐이면 돼, 금방 끝난다. 지난번에도 잘 참았잖아.”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오전 9시 송아름양(15)은 부산대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찾았다. 아름양의 부모님은 진료실에 들어오자 긴장한 딸을 달래기 바빴다. 치료를 위해 스스로 진료대에 누운 아름이지만 긴장한 듯 흔들리는 팔과 동동거리는 발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지난 2012년 장애인의 치과진료 지원을 위해 개원한 부산대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는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산지역에서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마취진료가 가능한 유일한 치과이다.

장애인구강건강센터는 장애인의 특성에 맞춰 전문화된 치료를 제공하는 지정병원으로, 전국적으로 서울의 중앙센터 1곳과 권역센터 14곳 총 15곳이 마련돼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 아름양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장애인 중에는 진료를 위해 눕는 자세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시끄러운 기계소리와 잇몸에 닿는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이 이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진료를 마칠 때까지 돌발행동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날 아름양의 진료를 위해서 성인 4명이 동원됐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아름씨의 머리를 고정하고, 보조인력(장애인 시간제 근로자) 1명은 아름씨의 몸과 다리를 맡았다. 양팔을 붙잡은 어머니는 의사가 페디랩(환자 몸을 고정시키기 위한 신체속박기구)을 채운 뒤에도 안심을 할 수 없어 치료시간 30분 내내 아름씨의 손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아름양 아버지는 “아름이가 진료를 받는데 성인 4~5명은 붙어야 하다보니 손을 보태기 위해 매번 회사에 연차를 쓰고 동행한다”면서도 “치과에서는 다음주에 또 오라는데 그러면 회사를 잘릴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는 “3~4년 전만 해도 어린이치과에 양해를 구하고 진료를 받았지만, 아름이가 조금 큰 뒤부터는 (병원 측에서) 은근히 눈치를 주더라. 죄송한 마음에 다른 치과를 찾아봐야 했다”면서 “센터가 있어 이렇게나마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진료는 지원인력 투입과 맞춤 장비 확보, 무엇보다 장애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의료진이 있기에 가능했다.

행동조절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발치, 스케일링 등 간단한 진료에도 전신마취가 필요하다. 비영리단체 ‘스마일 재단’에 따르면 20일 기준 신체억제 장비나 수면치료, 전신마취 진료가 필요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부산지역 치과는 부산대학교병원 장애인구장진료센터 1곳뿐이다. 부산의료원에서도 전신마취를 동반한 진료나 치료가 가능하지만 치과 진료가 가능한 날은 일주일에 단 하루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적인 진료에도 2~3개월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오형진 부산대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장은 “마산, 창원은 물론 안동, 함양 등에서 200㎞ 거리를 달려 오는 환자도 계신다”며 “센터를 찾은 장애인 환자가 여러 사정으로 충치 치료가 지연되면서 치료 시기를 놓쳐 기도가 막히고 심정지가 발생해 중환자실까지 간 적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보건복지부가 최혜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9월 기준 부산대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의 평균 진료 대기시간은 예약부터 초진까지 20일, 초진부터 전신마취진료까지 105일이 걸린다. 타 지역센터 중에는 전신마취진료까지 평균 356일(1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부산에서 자폐성장애 자녀를 키우는 A씨는 “장애인 환자 진료를 잘 본다는 선생님을 따라 양산까지 치과를 다닌 적이 있는데 제 몸보다 훨씬 큰 성인 자식을 데리고 1~2시간씩 이동하는 게 힘에 부치더라”면서도 “어딜 가나 진료를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다 보니 일단 치과 예약이 잡힌 날은 하루를 통째로 비워 놓고 병원 스케줄에 모든 일정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장애 특화 의료 인프라 부족…장애인 건강권 보장 안돼

부산 연제구 부산의료원에 구비된 '휠체어 체중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체중계에 오른 뒤, 휠체어 무게를 따로 측정해 두 값을 뺀 무게로 장애인의 체중을 측정한다..2023.4.19/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장애인의 의료 접근성 문제는 비단 치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는 기초적인 건강증진권을 보장하기 위해 오는 2024년까지 100여개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을 목표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운영 중인 곳은 11곳(예정지 포함 22곳)에 불과하다. 부산에는 부산의료원과 부산성모병원 2곳이 지정돼 있다.

의료계에서는 병원이 감당할 부담에 비해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휠체어 체중계, 장애특화 신장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탈의실 등 검진 장비와 장애유형별 지원 서비스를 위한 추가 인력 채용이 고려돼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기본 검진 중 채혈, 채뇨 단계에 간호사 5~6명이 동원되거나, 서비스 대상자인 중증장애인을 안심을 시키는 라포 형성 과정도 필요해 비장애인은 30분이면 끝나는 기본 검진에 평균 3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우지희 부산의료원 수어통역사는 “건강검진은 의료 서비스의 기본”이라며 “적합한 장비와 시설을 갖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장애인의 건강증진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건강검진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중증장애인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 요구

19일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장애인치과병원 설립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중증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2023.4.19/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이에 부산 지역사회에서는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시립장애인치과병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애인의 날 하루 전인 19일 부산 시청 앞에 모인 중증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은 최근 10년간 부산 장애인치과 현실은 개선된 점이 없다며 부산시에 장애인 구강진료기관 확충을 요구했다.

이들은 부산지역 중증장애인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장애특화 의료시설을 꼬집으며 “치과 가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길 바란다”고 외쳤다.

이에 부산시는 “장애 특화 의료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당장 병원 1~2곳 지정·확대하는 것보다 침례병원과 서부산의료원 등 현재 건립을 추진 중인 공공병원에 장애 특화 시설과 인력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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