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훈풍’으로 이어진 씨름 예능 인기

이정호 기자 2023. 4. 20.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불과 몇 년 사이 씨름을 향한 관심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최근들어 대회마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선수들과 관계자 뿐이던 대회장은 팬들로 북적거린다. 주말에는 관중석도 제법 채워진다. 팬들의 연령대도 젊어졌는데, 무엇보다 여성팬들이 늘어난게 두드러진다.

부쩍 늘어난 씨름 예능 효과를 부인할 수없다. 민족 전통 스포츠라는 상징성으로 명절마다 빠지지 않는 콘텐츠로 꾸준히 TV 전파를 탔던 씨름이지만, 최근 스포츠 예능이 장악한 방송가 트렌드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11월부터 약 3개월간 KBS2에서 방영된 ‘씨름의 희열’이 스타트를 끊었다. ‘씨름의 희열’은 화려한 기술과 스피드를 앞세운 태백·금강급 씨름 선수들의 경량급 천하장사(태극장사) 대회 도전기라는 컨셉으로 준수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평균 시청률은 2.81%, 최고 시청률은 4.2%를 찍었다. 한동안 외면받아왔던 비인기 종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공개 녹화 때는 KBS 신관 공개홀에서 ‘직관’하려는 팬들이 몰려 10대1 이상의 경쟁률(580석)을 뚫어야 했다. 비록 코로나19 확산세로 취소됐지만 결승전 티켓 6000여 장은 단 10분만에 매진돼 씨름계가 깜짝 놀랐다.

방송 초반에는 이미 방송 전부터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황찬섭, 허선행, 임태혁, 이승호, 최정만 등 씨름계 스타들이 흥행 동력이었다. 이후 시청자들은 힘과 힘이 충돌하는 모래판 안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수싸움과 화려한 테크닉 등 씨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영암군 민속 씨름단 차민수 장사. 대한씨름협회 제공



2022년 7월부터 두 달간 tvN 스토리에서 방송된 여성 씨름 예능 ‘씨름의 여왕’도 인기를 끌었고, 10월부터는 tvN 스토리에서 ‘씨름의 여왕’의 남성판 스핀오프인 ‘씨름의 제왕’, 채널A에서는 ‘천하제일장사 시즌1’이 방송되며 경쟁까지 붙었다. ‘천하제일장사’ 이후 채널A는 2023년 설 특집으로 ‘천하제일장사-천하제일결정전’을 제작했고, 현재 ‘천하제일장사 시즌2’가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오랜 침체기를 벗어난 씨름의 ‘훈풍’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방송을 통해 씨름이 대중적으로 노출되는 빈도가 많아진 영향 덕분이다. 덩치 큰 선수들이 뛰는 올드한 스포츠라는 이미지 때문에 인기가 꺾였던 씨름에 실제로는 탄탄한 근육질의 ‘훈남’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이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여기에 박진감 넘치는 경기 내용까지 더해지면서 몇몇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가 나오기도 했다. 몇몇 선수들은 아이돌 못지 않는 응원을 받는다.

‘천하제일장사 시즌2’에 출연 중인 우지원. 채널A 제공



씨름의 매력에 푹 빠진 출연자들도 이제 씨름 홍보대사나 다름없다. 타 종목 레전드급 선수들이 각 종목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씨름 단체전 컨셉 ‘천하제일장사 시즌1’에서 우승한 야구팀의 홍성흔은 “야구를 할 때보다 지금 더 부상도 당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재미있다”며 “서로 피부를 맞대고 심리싸움을 하면서 상대를 넘기고, 넘어진 상대의 흙을 털어주면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씨름의 매력은 해본 사람만 알 것”이라고 했다.

현역 시절 ‘코트의 황태자’로 불렸던 농구 레전드 우지원도 “씨름이 그냥 힘만 세면 이기는 운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반 년 이상 씨름을 하고 있는데 밤잠 설칠 정도로 씨름이 재미있다”며 “씨름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으면서 대중화되고, 인기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동메달 2개, 전국체전에서 13차례나 우승한 전 레슬링 국가대표 남경진은 “레슬링은 사실 결국 잘하는 선수가 이기는 반전 없는 종목”이라며 “하지만 씨름은 아무리 잘하는 선수여도 순간의 실수 하나로 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생활체육 씨름대회에도 나가고 싶을 만큼 씨름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방송에서 인기 콘텐츠로 검증된 씨름 예능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씨름 인기 회복을 위한 ‘K-씨름 진흥방안’을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와 씨름의 과거 영광을 되찾는데 팔을 걷어붙인 대한씨름협회가 정책적으로 씨름 예능 제작을 적극 지원하는 영향도 크다. 한 방송 관계자는 “새로 기획 중인 씨름 예능도 몇 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씨름과 관련한 드라마 제작 소식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채널A ‘천하제일장사 시즌2’ 방송 장면. 채널A 제공



한때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오랜 침체기를 지나 힘찬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영광을 되찾으려는 씨름에 잇따른 예능 흥행은 자신감이 된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천하제일장사’ 등 다양한 예능에 얼굴을 드러냈던 영암군민속씨름단 김기태 감독은 “저도 한라장사를 12차례나 했지만 씨름팬들만 알아봤는데, 예능에 출연하면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크게 늘었다. 많은 예능에서 씨름이 나오면서 대중적으로 씨름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 씨름이나 씨름 선수가 더 많이 방송에 노출될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