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출신에 천부적 재능까지… 서양음악史 가장 행복했던 작곡가[이 남자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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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선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신동 출신 음악가들에게 그 출신지를 붙여 어디 어디의 모차르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멘델스존은 그의 이름인 펠릭스(Felix·행복, 행운)처럼 금수저와 재능 모두를 안고 태어난, 그야말로 전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이름이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음악원인 것은 그가 이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최초의 교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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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칸트에 영향준 계몽 선구자
부친은 금융업에 종사한 은행장
유복한 환경 최고수준 교육 받아
생일에 오케스트라 통째로 초청
9살에 피아노 무대·10살엔 작곡
17살땐 ‘한여름 밤의 꿈’ 짓기도
음악사에선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신동 출신 음악가들에게 그 출신지를 붙여 어디 어디의 모차르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프랑스의 모차르트’ 생상스(1835∼1921), ‘러시아의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1906∼1975)처럼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수식은 탁월한 재능에만 머무른 것이 아닌 신동에서 거장으로 성장한 작곡가에게만 붙여지는 영광스러운 타이틀과도 같은 것이다.
이 수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곡가는 단연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멘델스존은 독일의 모차르트라 불리기도 하지만 이를 뛰어넘어 ‘19세기의 모차르트’라 칭송받는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은 그의 이름인 펠릭스(Felix·행복, 행운)처럼 금수저와 재능 모두를 안고 태어난, 그야말로 전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1729∼1786)은 ‘독일의 소크라테스’라 불리던 철학자로 칸트(1724∼1804)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계몽주의 운동의 선구자였으며,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1776∼1835)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은행장이었다. 덕분에 그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최고 수준의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교유하며 지식과 교양 또한 쌓을 수 있었다.
그의 대단히 유복했던 성장 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일례로 1821년 12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무려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집으로 초청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멘델스존은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병사들의 연애사건’을 직접 음악 감독했고, 이에 그의 어머니는 “어린아이가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을 그토록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다니 놀랍군요”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이라면 부러움을 넘어 사회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할 정도의 풍요로움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과 업적이 든든한 재력에만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 멘델스존 가문과 교분이 두터웠던 괴테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란 멘델스존에 비하면 유치한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다. 멘델스존은 일찍이 여러 악기를 다뤘고, 9살에 피아노 데뷔 연주 무대를 가졌다. 10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15살이 되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실내악곡과 협주곡, 4편의 오페라와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일궈냈다.
지금도 전국의 예식장에서 주말마다 연주되는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한여름 밤의 꿈’도 불과 17살에 탄생한 작품이다. 작곡 외 멘델스존의 또 다른 업적은 독일 음악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당시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음악들은 그 누구도 연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선배 작곡가들인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명곡들을 발굴해 자신의 지휘로 직접 연주하며 사장될 뻔한 작품들에 영속성을 더했다.
지금 우리가 바흐나 베토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멘델스존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업적은 교육에도 뻗어 있다. 독일 최초의 음악원은 그의 손에 의해 탄생됐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이름이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음악원인 것은 그가 이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최초의 교수였기 때문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op. 64
그가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자 19세기를 통틀어 최대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곡으로 1845년 3월 13일 닐스 가데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다비드의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베토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명작으로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뇌리에 각인되는 로맨틱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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