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고양이와 활동가들의 숨겨진 생생한 이야기,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동함직]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동네고양이와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또 귀엽게만 '소비'되는 고양이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고양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잡지를 만들게 됐습니다."
우연히 로드킬(찻길사고)을 당한 동네고양이를 구조하면서 '집사'가 된 그는 디자이너로서 재능을 살리며 동네고양이를 지키는 활동가가 됐다. 동네고양이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현수막을 디자인하고 재개발 지역 고양이의 구조 및 임시보호, 입양을 위한 홍보 포스터와 굿즈(상품)를 제작했다. 2021년에는 아예 고양이와 케어테이커(고양이를 돌보는 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만들었다. '매거진 탁(tac)!' 발행인인 김포도(42) 디자이너다. 탁(tac)은 고양이(cat)를 뒤집은 단어로, "고양이의 돌봄 활동을 뒤집어 새롭게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김 디자이너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온라인, 영상 시대에 책을 만드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면서도 "고양이 돌봄활동을 심도 있게 다룬 내용들인 만큼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뿐 아니라 고양이에게 관심이 없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로서 동네고양이를 지키는 활동가
-동네고양이 돌봄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우연히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를 구조해 기르게 되면서 고양이와 인연을 맺게 됐는데 그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당시 서울 강동구에서 시작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보고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
"지역캣맘협의회에서 다른 케어테이커들과 고양이 급식부터 구조, 입양 활동까지 맡았다. 고양이 돌봄활동에는 돈이 필요하다. 치료비, 사료비 등의 모금을 위해 달력을 판매하게 되면서 달력 디자인을 했다. 디자인이 전공은 아니었지만 서양화를 전공해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았다. 이후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타이포그래피(글자 디자인)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했다."
-'고양이 로드킬 주의' 현수막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옆 동네인 둔촌 주공아파트의 재개발이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둔촌냥이'라는 시민모임에 참여해 고양이 이주를 도왔다. 철거 공사가 시작되자 고양이 로드킬에 대한 우려가 컸다. 차량 속도를 줄이기 위해 현수막을 설치하는 게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조치였다. 디자인을 제작해 구청에 제공했고, 경찰과 협의를 거쳐 설치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좋은냥이 좋은사람들이 경기도에 제안해 현수막을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고양이 재개발 이주 돕기 사례로 둔촌냥이가 많이 거론된다.
"고양이 이주를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고양이 개체 수 파악이 필요했다. 대학교 연구실에서 버섯 데이터를 정리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이름, 추정나이, 건강상태, 중성화 유무 정보를 담았는데, 위치 노출의 우려로 책자 방식으로 제작을 했다. 이 외에 워크숍 포스터, 입양홍보물을 만들었다. 내용뿐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 편하고, 또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다."
고양이 돌봄활동하며 기록에 대한 필요성 느껴
-잡지를 발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3년) 둔촌냥이 활동을 하면서 기록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다행히 곧 출판할 4호까지 포함해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특화거리 점점점 사업으로 제작비를 지원받아 제작할 수 있었다. 10호까지 내는 게 목표다."
-잡지를 만드는 데 디자이너로서 신경을 쓰는 부분은.
"디자인은 기획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간파하고 그 부분을 잘 보여줘야 한다. 매거진 탁!의 경우 기획과 디자인을 동시에 하고 있다. 40, 50대 독자들이 많이 볼 것으로 예상해 글자 크기뿐 아니라 자간, 행간, 폰트가 글을 읽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실험적 태도를 가져야 하지만 결국 사용자인 사람이 불편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동네고양이와 케어테이커가 혐오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매번 혐오, 학대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알고 싶어서 공부한다.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지만 관련 글을 읽으면서 온라인화, 여성혐오 등과 연결되며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은 법인데 현재로선 여기에만 의지할 수 없어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인, 행정가, 활동가 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양이뿐 아니라 도심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고양이를 위한 디자이너가 되려면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도 있지만 아예 다른 전공을 하는 사람도 많다. 도구만 다루는 게 아니라 내용을 잘 알고, 이를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 최근에는 관련 프로그램이 발달해 디자이너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또 디자인에서만 그치지 않고 응용소프트웨어(앱)를 만들기도 하고, 잡지를 펴낼 수도 있고, 기획∙편집까지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동물을 위한 상품 디자인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동물의 생태를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동물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뭘 원하는지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가끔 사람이 보기 좋게 디자인한 제품이 나오는데 막상 동물은 잘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물 중심의 디자인이 나오려면 그만큼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우선이다. 또 해당 디자인이 동물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도움말: 김포도 디자이너 겸 매거진 탁! 발행인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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