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 방미 앞두고 중·러와 거친 말 주고받으며 각 세운 윤석열 정부
중, 대만해협 관련 “말참견 하지 말라”
대통령실 “우리가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에 달려,
‘말참견’ 발언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시사하고,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밝힌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놓고 러시아와 중국이 “반(反)러시아 적대 행위” “말참견 하지 말라”며 동시다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하나하나 맞받아쳤다. 러시아를 향해서는 “향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러시아에 달려있다”고 일축하는 한편 중국을 향해서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고 비판했다. 국빈 방미를 앞두고 있는 한국이 중·러와 각을 세우며 외교적으로 거친 말을 주고받는 상황까지 치달으면서,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결 구도가 고착화될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전날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된 후 러시아가 쏟아낸 비판과 경고의 발언은 대통령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 이어 이번이 벌써 네번째다.
러시아 외무부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우려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메드베데프 부의장도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quid pro quo)”면서 “한국 국민이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파트너인 북한의 수중에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한국 비판 발언은 갈수록 수위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입장을 내놓았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날 “한국은 그동안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무기 지원 가능성은 이러한 입장의 연속 선상”이라고 했지만, 이날 외무부는 “반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며 더욱 표현에 날을 세웠다.
윤 대통령 인터뷰의 파장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으로도 옮겨붙고 있다. 대만 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중국 역시 거친 표현을 써가며 반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라며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 국가로,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질과 경위가 완전히 다르다”며 “한국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말참견’ 표현은 청나라 작가인 포송령의 소설에 등장하는 말로 상대방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사자성어 ‘부용치훼’(不容置喙)를 사용한 것이다. 강한 어조로 상대방을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인데 일국의 정상에게 쓴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 역시 중·러 각각을 향해 하나하나 공격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사 발언이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당국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코멘트를 한 격이 되는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향후 러시아에 달려 있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 있다”고 역공을 가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내법에 바깥 교전국에 대해서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외교부 훈령을 봐도 어려움에 빠진 제3국에 군사 지원을 못 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을 향해서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고 날을 세웠다. 외교부는 20일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 공지를 통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우리 정상이 언급한 데 대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이 발언은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고 강하게 지적했다.외교부는 이날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했다.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계기로 현재 전 세계 갈등의 가장 큰 두 축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문제에 한국이 점점 더 깊숙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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