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운동 조절하는 머리 속 작은 인간, 100년 만에 바뀐다
뇌 속 가상의 작은 사람이 운동 조절한다는 것
fMRI 영상 분석 통해 다른 운동 조절 영역 발견
파킨슨병 같은 운동장애 뇌질환 치료 길 열어
뇌의 운동 지도가 100년 만에 수정됐다. 지금까지 대뇌 겉부분에서 인체 운동을 조절하는 영역이 신체 각 부분과 1대1 대응된다는 알려졌는데, 최신 뇌 영상 연구를 통해 군데군데 여러 근육을 같이 쓰는 복잡한 동작을 조절하는 새로운 영역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가 발전하면 파킨슨병처럼 운동능력을 잃는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할 새로운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방사선과의 니코 도센바흐(Nico Dosenbach) 교수와 에반 고든(Evan Gordon) 교수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대뇌 일차운동피질(primary motor cortex)에는 단순히 신체 각 부분을 움직이는 영역과 함께 여러 근육이 같이 움직이는 계획적인 동작이나 인체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네트워크도 있음을 뇌영상 연구로 알아냈다”고 밝혔다.
◇머리 속 작은 인간, 생각보다 복잡
193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한 신경외과 의사인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 박사는 사람 뇌에 운동을 조절하는 작은 인간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뇌수술 도중 환자의 뇌 표면에 미세한 전류를 흘리면서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봤다. 실험에서 귀 바로 밑 대뇌피질을 자극하면 입이 씰룩이고, 머리 꼭대기 바로 밑에 전류를 흘리면 발가락이 움직였다.
이후 의학 교과서에는 대뇌 일차운동피질과 신체 각 부분을 연결하는 지도가 실렸다. 이른바 호몬쿨루스(homunculus) 지도로, 라틴어 뜻대로 뇌 속에 운동을 조절하는 ‘작은 인간’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운동피질에 입 동작을 담당하는 영역이 넓어 작은 인간은 입이 큰 기이한 모습이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건강한 사람 7명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12~15시간 촬영했다. 뇌의 특정 영역이 활동하면 에너지 소비가 늘면서 그쪽으로 혈액 공급이 늘어난다. fMRI는 그런 곳을 불이 켜진 것처럼 환하게 보여준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MRI 장치 안에 누워 책을 읽는 것처럼 움직임이 거의 없는 단순 동작부터 음식물을 삼키거나 눈을 깜빡이는 식의 다양한 동작까지 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펜필드 박사가 밝힌 호문쿨루스 지도대로 일차운동피질이 신체 각 부분의 운동을 조절했다. 기존의 호문쿨루스 지도처럼 팔과 다리, 얼굴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영역이 있었다. 하지만 고든 교수 연구진은 그 사이사이 계획적인 동작을 조절하고 혈압이나 통증 같은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뇌 부위와 연결된 영역 세 군데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영역을 ‘신체-인지 동작 네트워크(somato-cognitive action network, SCAN)’로 명명했다.
SCAN 영역은 개별 신체 부위나 동작과는 상관없이 계획된 동작에만 관여했다. 이 영역은 실제 몸이 움직일 때는 활성화되지 않지만, 움직이려고 생각할 때는 활성화됐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한 영역이 사고, 계획, 각성과 함께 통증, 혈압, 심박수와 같은 내부 장기의 기능 조절에 관여하는 뇌의 다른 부분과도 강하게 연결된 것을 확인했다.
도센바흐 교수는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뇌 영역의 일부가 사고와 계획, 혈압과 심장 박동과 같은 비자발적 신체 기능 제어에 관여하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명상을 통해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진정시키면 당연히 혈압과 심장박동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뇌 속에서 운동을 담당하는 작은 인간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나왔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마이클 그라지아노(Michael Graziano) 교수는 2002년 ‘뉴런’에 원숭이에게 여러 근육을 쓰는 운동을 시키는 실험을 토대로 호문쿨루스 지도가 정확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마크 제너로드 인지과학연구소의 안젤라 시리구(Angela Sirigu) 박사는 2008년 ‘뉴로사이언티스트’에 팔꿈치 아래를 절단한 환자를 연구해 운동피질에는 여러 근육을 함께 쓰는 동작을 조절하는 새로운 영역이 있다고 발표했다.
◇맞춤형 뇌질환 치료 길 열어
연구진은 영국의 바이오뱅크와 미국의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 청소년 뇌 인지 발달 연구에서 수집한 5만여명의 뇌 fMRI 정보도 이번 실험 결과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새로 밝힌 운동 조절 영역은 신생아의 뇌에선 보이지 않고 생후 11개월과 9세에서는 확인됐다. 원숭이 뇌 영상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신생아는 아직 동작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에 발견한 영역이 복잡한 운동을 통합 조정하는 네트워크임을 뒷받침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뇌졸중이나 사고로 운동피질에 생긴 손상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온몸이 떨리는 파킨슨병도 마찬가지다. 이 병은 근육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담당하는 뇌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등 운동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현재 뇌에 전기자극을 줘 운동장애를 치료하고 있지만 효과가 들쭉날쭉하다.
이번 연구 결과로 업데이트된 호문쿨루스 지도는 뇌 자극 치료 효과가 다른 이유를 밝힐 수 있다. 미국 모스재활의학연구소의 다일란 에드워드(Dylan Edwards)는 네이처지 인터뷰에서 “어떻게 일차운동피질 손상에서 회복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결과는 운동피질의 손상 형태에 맞는 맞춤형 치료를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패트릭 해가드(Patrick Haggard)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이번 연구는 동작을 조절하는 운동피질에 대한 신경과학계의 오랜 질문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며 “이번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사람이나 실험동물을 영상 촬영 장치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면서 SCAN 영역의 신경세포 활동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964-2
The Neuroscientist(2008), DOI: https://doi.org/10.1177/1073858407309466
Neuron(2002), DOI: https://doi.org/10.1016/S0896-6273(02)00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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