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세계관에 갇혔다’…정의당 틀 깨자는 ‘탈이념 제3지대론’

임재우 2023. 4. 2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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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세 번째 권력’ 출범식에서 발언하는 조성주·류호정·장혜영 공동위원장. 사진 ‘세번째 권력’ 제공.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선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의 출범식이 열렸다. 정의당의 장혜영·류호정 의원,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 등이 주축이 된 이들은 ‘정의당을 해체하자’는 정의당 의견그룹이다.

이들의 목표는 ‘낡은 진보정치 청산’이다. 이들은 출범선언문에서 “노동조합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그치는 정당”, “민주당 왼쪽을 자처하며 잔여 권력을 기대하는 사실상의 위성정당”, “폐쇄적 운동권 정당”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끊임없이 지적돼온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진보정당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조성주 전 부의장은 “보수주의뿐 아니라 (운동권의) 구좌파(민중민주 계열)나 엔엘(NL, 민족해방 계열)도 ‘권위주의적 경향성’을 갖고 있다”며 “새로운 정치인이라면 기존의 진보·보수에 모두 존재하는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주의적 다원성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사이가 아니라, 권위주의·포퓰리즘과 자유주의·책임정치 사이에 전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수·자본·검찰을 거악으로 여겨온 진보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 ‘대화가 가능한 정치’를 해보자고 주장한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동시에 초대한 출범식은 그들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진보정당 안에서 ‘탈이념 제3지대론’이 나온 건 매우 이례적이다. 이전까지 진보 진영에서 나온 제3지대론의 연합 상대는 많이 가도 ‘민주당 내부의 왼쪽’까지였다. 그런데 ‘세번째 권력’은 진보냐 보수냐를 뛰어넘자고 한다. 진보정당이 대안이 되지 못한 역사에 더해, 청년층의 탈이념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세번째 권력’에 참여한 이는 50여명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의당 현역 의원 2명이 공동운영위원장에 이름을 올리고, 당 지도부인 이기중 부대표 등까지 참여하면서 당내 논란도 일고 있다. 정의당 당원인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이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과 함께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성찰과 모색’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 이런 흐름과 연동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분당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당 일각의 의심은 강하게 부정했다.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당내에서 권한도 책임도 크다. 새로운 정치로 가는 전환을 함께 맞이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15일 공동위원장을 맡은 류호정·장혜영 의원, 조성주 전 부의장과 나눈 일문일답.

15일 정의당 주도의 정치그룹 \

“‘거악 척결 세계관’ 끝내야…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정치하겠다”

‘세번째 권력’과 기존의 진보정치가 구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조성주 전 부의장(이하 조)=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진보정치를 구성했던 지난 20년의 세계관이 ‘반독재 민주화’라는 큰 틀에서 ‘민주당의 세계관’과 구분되기 어려웠다고 본다. 거대한 악이 있고, 그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 앞에서 모두가 총단결해야 한다는 거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세계관인데, 저희는 그런 거악이 없다고 본다. 나아가 거악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라고도 본다. 그 거악이 군부독재였다가, 재벌이 됐다가, 검찰이 된 것인데,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만 놓고 봐도, 노동시장과 기업·노동자들이 공존하면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재벌·기업·자본이라는 거악을 척결하는 방식으로 노동의 권리가 넓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진보정치’라는 이름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조=‘진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많이 오염되어 있고, 그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보정치는 국유화와 공공성 등 ‘국가의 힘’을 통한 해법을 주로 제시해 왔는데, 불평등 문제는 그렇게 해결할 수 없다. 시장과 사회의 힘을 적절히 배합해야 하는데, 진보정치가 이를 굉장히 소홀히 해왔다.

보수정당 소속이거나 이른바 ‘제3지대’에 있는 인사들에게도 문을 열어놓는 것인가.

장혜영 의원(이하 장)=저희는 ‘최대공약수’를 규정해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모든 의제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시점으로 왜곡되고 있다. 우리의 진단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이전에 어떤 생각을 가졌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류호정 의원(이하 류)=이준석 대표가 축사에서 이야기했듯이 지금처럼 서로를 악마화하지 않는, 토론의 대상으로 만날 수 있는 상대방을 원한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상대라면, 조금이라도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저희 역시 그런 상대가 되길 바란다.

결국 우파로 가겠다는 선언과 무엇이 다르냐는 반응도 있다.

조=지금 한국사회 정치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주의적 경향성에 대항해 어떻게 자유주의적 다원성으로 나아갈 것이냐다. 한국의 보수주의뿐 아니라 구좌파나 엔엘(NL)에도 ‘권위주의적 경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갈등과도 연관된 문제다. 한국의 2030 엠제트(MZ) 세대와 기존 세대 사이에는 문화적 갈등도 있지만, 분명한 ‘가치적 갈등’도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 하키 단일팀 문제가 그랬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치인이라면 기존의 진보·보수에 모두 존재하는 권위주의에 맞서서 자유주의적 다원성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지난 11일 전남 목포 청년회관 앞에서 재창당 전국대장정 기자회견을 연 이정미 정의당 대표. 사진 정의당 제공

“현상유지적 재창당으로 가면 정의당 소멸…이제 논쟁 시작할 것”

‘자강론’을 강조하는 이정미 대표의 재창당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장=지금 지도부의 인식은 ‘이대로 가다 보면 우리에게 기회 올지 모른다’로 보인다. 이런 현상유지적 인식으로 가면 당은 소멸한다고 본다. 우리가 스스로를 재구성해야만 살아갈 길이 있다.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하고, 그 논쟁의 중심에 비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터놓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고 보는데, 현재 지도부는 그걸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조=한 마디로 ‘나이브’하다. 재창당이 아니라 조직 재정비다. 기존의 진보정치를 해체하는 수준의 재구성이 있지 않으면 지금의 정의당 실력으로는 어떤 전략과 전술을 써도 (재창당에) 성공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조=한 가지 검토하고 있는 것은 ‘최저임금’에 대한 토론이다. 지금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2000원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영업자들은 결사반대한다. 이를 책임 있게 조정하고 대안을 찾는 게 정치인데, 진보정치는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하면 민주노총과 똑같이 ‘1만2000원 인상’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 최저임금을 책임 있게 대하는 게 무엇인지 논쟁해보고 싶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당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류=저는 정의당의 비례대표 의원이고, 당내에서 권한도 책임도 크다. 안에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설득해서 다 같이 새로운 정치로 가야 한다. 그런 전환을 함께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당에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 그렇게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너무 우울한 상황이 아닌가. 오늘 오신 분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웃음)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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