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응징 통쾌함” 준 ‘모범택시’ 떠나고…TV 드라마 구원투수는?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배우 이제훈은 지난 15일 종영한 드라마 <모범택시>(SBS) 시즌2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다. <모범택시> 시즌2는 1회 시청률 12.1%로 시작해, 마지막회 21%까지 오르며 기분 좋게 막을 내렸다. 총 16회 평균 15%(닐슨코리아 집계). 현재 지상파·케이블·종합편성채널 통틀어 드라마 전체 2위 성적이다. 1위 <한국방송2>(KBS2) 주말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8회까지 평균 19%)와도 큰 차이는 없다. <모범택시> 시즌1이 한 회를 2회로 나눠 내보냈던 터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체감 화제성은 훨씬 높다. 인기에 힘입어 <모범택시>는 최근 시즌3 제작이 확정됐다.
<모범택시> 시즌2의 성공은 시즌1보다 피부에 더 와닿는 사건들이 자주 등장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아동 학대와 취업 사기, 사이비 종교 단체, 부동산 불법 브로커, 군대 성폭력 피해 사건 등은 요즘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이다. 현실에서는 잘 해결되지 않는데,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김도기가 가해자를 반드시 응징했다. 개연성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속 시원하게 해주는 김도기한테 박수를 보냈다. 이제훈은 “(시청자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법의 심판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배우로서 사회적인 현상에 관심을 갖고 시청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견고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주택청약에 당첨되려고 불법 입·파양하는) 5~6회 내용이 가장 화가 났다”고 한다.
<모범택시> 시즌2는 이런 현실의 문제들을 잔인하게 고발하는 대신 풍자적으로 접근했다. 이제훈은 “주인공 캐릭터에 흡인력을 더 주려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했다”는데, 이는 온라인 ‘밈’ 문화와 잘 맞아떨어졌다. 농부, 법사 등 과장되어 보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 오히려 누리꾼들의 관심을 끈 것. 오상호 작가는 “시즌2 키워드는 ‘부캐의 향연’과 ‘기억’이었다. 기억해야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중심 메시지로 두고, 우리가 한편에 묻어두고 넘어갔던 사건들을 되돌아보는 고민을 담았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이단 피디(PD)는 “부캐 플레이에 집중하면서 시즌1의 무게감을 줄이고 김도기가 신명나게 활약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 대신 빌런(악당)을 더 악하게 만들어 시청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포인트를 추가했다”라고 말했다.
시즌1에서 개별 사건을 나열했던 것과 달리, 시즌2에서는 매회 사건들이 거대 악과 연결되면서 시즌제 드라마의 틀을 갖췄다. 이단 피디는 <모범택시>가 시즌제로 이어지려면 “사건을 해결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시청자들이 예측 가능해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여러 시즌을 관통하는 보다 길고 큰 서사 구조를 고안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모범택시> 성공은 요즘 티브이 드라마가 고전하는 상황이라 더욱 주목받는다. 최근 지상파·케이블채널·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들이 수치로도, 화제성으로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게 사실이다. <성균관 스캔들>부터 시작해 지난해 <옷소매 붉은 끝동>까지 청춘 배우를 앞세운 퓨전 사극은 성공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꽃선비 열애사>(SBS)와 <조선변호사>(MBC) 등 평일 미니시리즈가 2~3%대에 갇혀 있다. 그나마 격변의 대한민국을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 <오아시스>(KBS2)가 6~7%로 선전 중이다. 30%는 거뜬했던 <한국방송> 주말드라마도 16.5~21.7% 수준이다.
한국 콘텐츠 시장은 전체적으로 위기. 특히 티브이 드라마가 미디어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모범택시>나 <더 글로리>처럼 요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통하는데, 방영 중인 티브이 드라마 중에는 삶과 동떨어진 것들이 많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장이 어려워지면서는 어떤 드라마든 제작비가 보장되는 오티티로 가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내용을 떠나 캐스팅에서도 블록버스터가 사라졌다. 넷플릭스 <퀸메이커>만 해도 김희애와 문소리가 주연을 맡았다. 이런 드라마들이 최근 대거 오티티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와 <나의 아저씨> 김원석 피디에 박보검과 아이유가 주연 맡아 기대했던 <폭싹 속았수다>도 최근 넷플릭스행을 결정했다.
티브이 채널들도 조급해 하고 있다. 한 지상파 출신 프리랜서 드라마 피디는 “지상파에서나 보던 내용의 <판도라: 조작된 낙원>이 현재 <티브이엔>에서 방영 중인 것처럼, 각자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던 분위기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티브이 드라마는 오티티가 장르물을 자체 제작하면서 위기가 왔을 때 오히려 티브이 채널에서 보여주던 따뜻한 정서에 집중하거나, 가성비 좋고 신선한 소재로 탈출한 바 있다. 지상파에서 <동백꽃 필 무렵>처럼 완성도 높은 이야기가 등장했고, <열혈사제> <스토브리그>처럼 형식과 소재에서 새로운 시도도 이어졌다. 정덕현 평론가는 “제작비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이럴수록 자기 색깔을 잘 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모험적인 시도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들은 최근 시작한 드라마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직은 예열 기간이다. 지난 17일 시작한 <패밀리>(tvN)와 지난 12일 시작한 <스틸러: 7개의 조선통보>(tvN)가 3~4%대. 그나마 15일 시작한 <닥터 차정숙>(JTBC)이 1회 4.9%에서 2회에 7.8%로 단숨에 오른 것이 고무적이다. 이는 1회에서 시어머니, 남편한테 억눌려 살던 주부 차정숙이 ‘죽다 살아난’ 뒤 각성하고, 2회에서 내 마음대로 살겠다며 달라지는 모습이 시청자들한테 통쾌함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상반기 <신성한, 이혼>(JTBC)의 조승우가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것처럼, 주요 배우들 작품의 성공 여부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 글로리>로 화제 모은 이도현이 6살 지능을 지니게 되는 <나쁜 엄마>(JTBC)가 오는 26일 시작한다. 김은희 작가와 김태리가 손잡은 <악귀>(SBS)와 장태유 피디와 이하늬가 손잡은 <밤에 피는 꽃>(MBC), 박지은 작가와 김수현·김지원이 만난 <눈물의 여왕>(tvN) 등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모범택시> 시즌2처럼 기존 팬들이 기다리는 시즌제 드라마도 힘을 보탠다. 28일 <낭만닥터 김사부>(SBS)가 시즌3을 시작하고, <경이로운 소문>(tvN) 시즌2 등이 준비됐다. 새달 6일 시작하는 <구미호뎐 1938>(tvN)은 <구미호뎐> 후속이고, 8월 시작하는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SBS)는 <소방서 옆 경찰서> 후속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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